몇 주전에 올림픽공원에서 후투티를 봤지만 바로 날아가는 바람에 촬영을 하지 못했었다. 그래서 최대한 자주 올림픽공원을 방문해서 후투티를 본 장소 근처를 찾아봤지만 더 이상 만날 수가 없었다.
그런데 경주 황성공원에는 후투티가 상주한다는 얘기를 듣고는 토요일 저녁에 뜬금없이 후투티 보러 경주로 출발!!
정속 주행으로 억수 같은 폭우도 뚫고 경주에 도착하니 이미 한밤중이었다. 경주는 고딩 때 수학여행 이후로 처음...
주말 밤이라 숙소 잡기가 어려워 아내가 힘들게 예약한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알람 맞추고는 바로 꿈나라로~
아침 6시에 일어나서 준비하고 바로 황성공원으로 향했다. 미리 알아보기는 했는데 새가 항상 같은 위치에 있는 것도 아닐 거고 공원이 생각보다 넓어서 잘 찾을 수 있을지 걱정이 됐는데, 이른 아침임에도 어르신 부대가 공원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낭패였다... 이렇게 사람이 많을 줄이야... 이러면 새가 있을 거 같지 않았다. 날씨 예보도 비 예보였는데 다행히 비는 몇 방울 떨어지다 말았지만 이 넓은 공원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피해서 탐조를 해야 했다.
사람들이 바글바글한 공원에는 새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이런 공원에서 새를 찾을 수 있을까... 사람이 없는 길을 따라가 보니 궁도장이 있었는데 근처에는 새소리가 좀 들렸다. 꾀꼬리 소리가 크게 들렸고 그 사이에 후투티 소리도 들렸다. 일단 후투티가 있다는 건 소리로 확인이 된 셈이다. 그럼 찾기만 하면 되는데...
궁도장을 나와 공원 안쪽으로 들어가니 어르신들이 줄 서서 이동하고 있는 형상이었다. 저렇게 운동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어이없는 운동을 마구 하고 계신 어르신들을 뚫고 안쪽으로 깊이 들어갔지만 이동하는 내내 새는 한 마리도 볼 수 없었다. 우려가 현실이 된 셈.
혼자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는지 경직된 나를 보고 아내가 걱정을 한다. 이제 시작인데 여유를 갖으라는 아내의 충고. 맞다. 처음 온 장소에서 바로 새를 찾는 건 말이 안 되는 일이다. 시간이 필요했다.
정신을 차리고 인파를 벗어나서 한적한 길을 찾아 이동을 했는데 산책로 옆 풀밭에 새가 한 마리 있었다.
후투티를 찾을 수 있을까 걱정을 했는데 의외로 쉽게 산책로 옆에서 발견을 했다.
날아갈까 봐 조심조심 움직이며 관찰을 했는데, 우리를 슬쩍 보기는 했지만 우리가 미동도 않고 가만히 있자 안심이 됐는지 신경 쓰지 않고 계속 먹이 활동을 했다.
부리로 땅을 계속 콕콕 쑤시면서 먹이를 찾는데 금방 애벌레를 찾아냈다. 부리로 요리조리 돌려서 먹기 좋은 위치로 만든 다음에 입으로 던져서 꿀꺽~ 사냥하는 것도 먹는 것도 너무 신기했다.
열심히 후투티를 관찰하고 있는데 어떤 할머니가 우리가 궁금했는지 굳이 찾아와서는 큰소리로 참견을 하는 바람에 날아가 버리고 말았다... 아... 4시간 달려와서 5분 영접...
허망했지만 그래도 후투티를 봐서 너무 좋았다. 어제 꿈에 계속 나오더니 실제로 촬영도 하고 사냥하는 것도 보고...
후투티를 보고 나니까 갑자기 마음에 여유가 생겼다. 이제 아침 7시. 편하게 공원을 좀 더 돌아보기로 했다.
귀여운 다람쥐도 보고 여유가 생겨 산책하듯 걷고 있었는데 이번에는 아내가 속삭이듯 '후투티 후투티'라고 알려준다.
세상에... 앞에 후투티 3 마리가 모여 있었다. 조류갤에서 어느 분이 경주에서 후투티는 까치급은 아니고 물까치급으로 볼 수 있다고 했는데 사실인가 보다.
후투티는 걸어서 이동을 하는데 되지빠귀처럼 깡총깡총 뛰지 않고 쪼로로로로 걸어간다. 아내는 너무 귀엽단다.
후투티들을 보고 있자니 시간 가는 줄 모르겠다. 벌써 4마리를 만났다. 지금까지 황성공원에서 까치를 2마리 봤는데 후투티를 더 많이 만났다. 정말 황성공원은 후투티 탐조의 성지다.
경주시민운동장 너머까지 공원이지만 차 막히기 전에 서울로 올라갈 생각이라 입구로 돌아가면서 새를 찾아보기로 했다. 오전 8시가 되어가자 신기하게도 사람들이 싹 사라졌는데 아침운동 끝인가 보다.
얼마 이동하지 않았는데 또 후투티 발견!!
두 마리 보면 많이 보겠지 생각하고 왔는데 벌써 5 마리를 봤다. 시간을 잘 맞춘 걸까? 이유는 모르겠지만 대박이다.
후투티 못 찾을까 봐 걱정한 게 한 시간 전인데 이제는 눈만 돌리면 후투티가 있다. 신기한 경험이었다. 올림픽공원에서 박새를 찾아도 이렇게 쉽게 찾지는 못할 거다. 황성공원을 찾은 건 정말 신의 한 수였다.
주차장으로 가는 길에 계속 후투티를 만났는데, 주차장 바로 앞 나무들 사이에도 후투티가 있었다. 아까는 사람들이 많아서 숨어 있었나 싶을 정도. 갑자기 나타난(?) 후투티들을 관찰하느라 시간이 후딱 지나갔다.
후투티에 정신이 팔려서 다른 새들은 눈에 띄는 새들만 관찰을 했는데 이곳에 흰배지빠귀도 있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됐다. 어렵게 간 곳인데 좀 더 둘러볼 걸 그랬나 보다. 다음에 또 언제 다시 오게 될지...
1시간 조금 넘게 탐조를 했는데 후투티 총 12마리를 볼 수 있었다. 정말 까치, 멧비둘기 보다 후투티가 더 많았다. 혹시 후투티를 못 찾았다면 하루를 더 머물며 옥산서원도 가보고 이곳저곳에서 찾아볼 생각이었는데 황성공원에서 일정 끝.
빠르게 마무리하고 서울로 출발하기 전에 해장국거리에서 해장국 한 그릇.
그런데 해장국거리에 해장국집이 딱 하나. 로드뷰에는 여러 집이 있던데 다 망했나 보다. 맛을 보면 살짝 납득이 가는...
일요일이라 서울로 돌아오는 차들이 많을 거라 후다닥 먹고는 부지런히 출발했다.
아무 계획 없이 충동적으로 떠난 후투티 탐조 여행이었지만 많은 후투티도 보고 아름다운 경주도 살짝 둘러볼 수 있어서 아주 좋았다. 경주에 머문 시간보다 차에서 보낸 시간이 더 많았지만 아내도 좋았다고 한다. 그럼 다음엔 또 어디로 가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