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뜩 흐린 주말. 가을장마라고 부를 정도로 연일 비가 온다. 오늘도 오후 늦게는 비 예보다.
요즘 탐조에 빠져서 너무 달렸더니 몸이 천근만근이라 오전엔 좀 쉬다가 오후에 아내와 올림픽공원으로 향했다. 가까운 선정릉을 갈까 했지만 주말이라 사람이 많을 거 같아 포기...
그렇게 올림픽공원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부슬부슬 비가 내린다...
이슬비 수준이라 그냥 맞으며 탐조를 하려고 했는데 빗방울이 점점 더 거세지기 시작하더니 소나기로 바뀌어 버림...
도착 3분 만에 탐조 끝. 허망하다... 낙심하는 나를 아내가 어르고 달래서 일단 카페에서 기다려 보자고 한다.
오오! 카페에서 기다린 지 30분도 안 돼서 비가 그쳤다!! 역시 아버지 말씀이 맞았다. 여자 말을 들어야 하는 거다. 데헷!
금세 신이 나서 다시 탐조를 시작했는데 비가 온 직후라 그런가 새들이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단풍나무 근처는 온통 밀화부리의 짹짹 거리는 소리로 소란했다. 정신이 없을 정도...
소나기가 지나가고 나니까 습도는 엄청났지만 덥지 않고 시원해서 좋았다. 오후에는 또 비 예보라 공원 한 바퀴는 포기. 평소 어르신들이 모여 계시던 곳에서 지나가는 새들을 관찰할 생각이었다.
아내랑 신나서 걸어가고 있는데 어디선가 도도독~ 하는 소리가 들렸다. 딱따구리 소리다!
비가 와서 그런가 어르신들이 보이지 않았다. 어르신들은 갑자기 안 보이면 살짝 걱정된다. 비가 와서 일찍 들어가셨겠지...
아내와 단둘이 풀밭에 서서 새가 지나갈 때까지 기다렸다. 끝을 알 수 없는 기다림의 시작...
쇠솔새 두 마리라니... 거기다 귀한 쇠솔딱새도 봤으니 오늘 조복은 최고인 듯. 혼자 신나서 헤헤거리고 있는데 아내가 조용히 새가 또 왔다고 알려준다. 새가 왔다고 호들갑 떨다가 날려 보내던 시절도 있었는데 우리 부부 많이 발전했다.
쇠솔새와 노랑눈썹솔새는 언뜻 보면 차이가 없어 보이는데 날개 깃털이 확연히 다르다. 부리와 배의 색은 현장에서 구별하기 어렵지만 노랑눈썹솔새의 날개 깃털은 쇠솔새 보다 더 어둡고 끝이 밝은 색이라 브이(V) 모양으로 구분할 수 있다.
오래 서 있었더니 아내가 힘들어했다. 얼른 벤치에 앉혀 놓고 혼자 숲 안쪽으로 들어가 보니까 어르신들이 거기 모여 계셨다. 비가 와서 자리를 옮기셨나 보다. 인사드리고 주위를 둘러보니 되지빠귀들이 돌아다닌다.
소나기가 지난 후의 공원은 새들이 폭발적으로 활동하는 것처럼 엄청난 활력이 느껴졌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알차게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