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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동사니

[2021년 12월 19일] 갑작스런 개인 컴퓨터 교체 후기

by 두루별 2021. 12. 22.

1999년 처음 온라인 게임을 개발하면서 개발자의 컴퓨터는 표준 이하의 성능이어야 한다는 나름의 규칙을 세웠습니다. 
고사양에서 개발을 하면 평균 성능의 컴퓨터를 사용하는 대다수의 사용자들이 제대로 된 성능을 얻기 어려웠기 때문에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이었고, 그 결정을 8년 전까지 혼자서 착실히 지키고 있었습니다. 8년 전이면 이미 게임 개발도 안 하고 있었는데 말이죠...

그래서 항상 거의 똥컴 수준의 컴퓨터를 사용하고 있었고, 게임도 최저 사양으로 간신히 돌아가는 수준이었습니다.(GTA5를 640x480 해상도로 플레이한 의지의 한국인.) 그래도 그 긴 시간을 불만 없이 잘 사용했었습니다. 문제는 천체 사진 촬영을 다시 시작한 후 데이터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발생했는데, 장당 110MB가 넘는 이미지를 수십, 수백 장씩 합성을 하려니 똥컴의 처리 능력을 훨씬 뛰어넘는 작업이었고, 버벅거리다 못해 화면 갱신도 못하는 상태가 되어 이미지 처리하는 동안은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서 제발 무사히 처리가 끝나기만 기도하며 멍하니 있기 일쑤였습니다. 

그러다 문득... 

'20년을 넘게 똥컴으로 먹고살았는데, 이제는 제대로 된 컴퓨터 한 대 정도는 있어도 되잖아?'라는 나름 합리적인 생각이 뇌리를 스쳐 지나갔습니다. 거기다 결정적으로 '업무용 노트북은 400만 원이 넘는 걸 쓰면서 정작 나를 위한 컴퓨터는 100만 원도 안 하는 똥컴을 쓰다니... 이번 기회에 쓸만한 걸로 바꾸자!'로 결론이 나버렸습니다.

저의 특기인 빠른 결정, 빠른 구매, 빠른 배송 (그냥 생각 없이 샀다는 얘기죠)

그 짧은 순간에 나름 가격 비교를 해 보니 그래픽 카드(GPU)의 가격에 손이 덜덜 떨렸습니다. 내장형 그래픽만 쓰다가 그래픽 카드를 돈 주고 사는 것도 억울한데 비트코인 채굴 때문에 가격이 천정부지라니... 거기다 조립 PC나 브랜드 PC나 가격 차이가 크지 않더라는 사실. 그럼 골치 아프게 뭐하러 조립 PC를 쓰나요. 생각할 거 없이 브랜드 PC 고고!

고르고 고른게 HP의 OMEN 45L 게이밍 PC였습니다. 회사는 서버, PC, 노트북, 모니터 까지 온통 DELL이어서 다른 브랜드를 쓰고 싶기도 했고, 무엇보다 디자인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좀 현란하긴 하지만 게이밍 PC니까요.

 

OMEN 45L GT22-0011kr 게이밍 데스크탑

과학적인 냉각, 형이상학적 점화

www.hp.com

AMD Ryzen™ 7 5800X(3.8GHz)에 NVIDIA® GeForce RTX™ 3080이라니...
유저들에게 권장사양으로 추천만 해봤지 제가 써볼 거라고는 생각도 못해본 하이엔드 그래픽 카드였습니다. 

기왕 어렵게 업그레이드하는 거 CPU도 끝판왕을 사용해 보자 싶어 PC가 도착하자마자 CPU는 쏙 빼서 팔아버리고 AMD Ryzen™ 9 5950X로 바로 업그레이드!

세상에... 논리 프로세서가 32개... 회사에서 사용하는 인텔 i9 노트북도 이 정도는 안되는데... 돈 쓴 보람이 있어 뿌듯합니다...

바로 Pixinsight로 이미지 처리를 돌려보니 처리 속도는 Ryzen™ 7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당연하겠지만 두 CPU의 클럭 속도가 비슷하기 때문이죠. 진짜 성능 차이는 멀티태스킹에서 판가름 날 겁니다. Pixinsight에서 무겁게 이미지 처리를 돌리면서 Photoshop을 열고 연산이 많이 들어가는 필터 액션을 마구 돌려봤습니다. 프로그램 하나만 돌리는 것처럼 아주 부드럽게 돌아가더군요. 이런 부드러움이라니...

지금까지 이미지 처리 시간 때문에 장수를 줄이려고 서브 노출을 길게 줬었는데 이제는 계산된 대로 짧은 서브 노출로 촬영해도 처리에 문제가 없을 거 같습니다. 예전 PC에 비하면 처리 시간도 많이 줄었지만, 이미지 처리를 하면서 게임을 하든, 다른 작업을 하든 이제는 PC 파워가 남을 테니까요. 멍 때리며 뇌를 쉬게 하던 시간이 없어진 게 아쉽네요.

이상 갑작스런 컴퓨터 업그레이드 후기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