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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찰기록/자연 관찰기

[2024년 4월 23일] 수원 일월저수지 - 뿔논병아리 육추

by 두루별 2024. 4. 25.

수원의 일월저수지에 뿔논병아리 육추가 한창인 모양이다. 뿔논병아리는 등에 어린 새끼들을 업고 다니는 걸로 유명한데 그 모습을 보러 많이들 다녀오신 모양. 지난주에 함께 가자는 제안을 정중히 거절하고 며칠이 지난 오늘 혼자 일월저수지로 뿔논병아리를 보러 다녀왔다.

지난주에 다녀오신 분들 얘기로는 이미 새끼들이 많이 자라서 곧 어미 등에 타지 못할 거라고... 늦으면 내년이다. 갈 거면 더 늦기 전에 가는 게 맞다. 운전하기 귀찮아서 대중교통으로 가는 길을 찾아보니 1시간이면 도착하는 거리. 금방 보고 올 생각으로 점심시간이 다 돼서 수원 일월저수지로 출발했다.

전철 타고 사당 가서 수원 가는 버스로 갈아타면 끝. 환승도 쉽고 차도 안 막혀서 금방 도착했다. (우리나라 대중교통 짱!)

코앞에서 7800번 버스를 보내는 바람에 9분 기다림.
버스는 달리고 달려 목적지에 도착. 일월공원 안에 일월저수지가 있는 모양이다.
공원 입구 부터 또르르르 하는 방울 굴러가는 소리가 나더니만...
방울새(참새목 / 되새과)가 노래하고 있었다.
소리로 봐서는 많은 수가 있는 거 같았다.

처음 온 곳이라 어디가 어딘지 몰라서 일단 지도를 보고 일월저수지가 있는 곳으로 이동했는데 입구에서 바로였다. 주위를 산책할 수 있도록 산책로가 있었는데, 출입이 통제된 일종의 섬과 갈대밭이 있어서 새들에겐 좋은 환경으로 보였다. 호수 주위를 한 바퀴 돌면 대략 6km 정도라고 하니 슬슬 돌아보면서 뿔논병아리를 찾아볼 생각이었다.

작은 수로가 섬과 산책로를 나누고 있었다. 이런 분위기 좋아라 함.
저수지 열라 넓음... 건너편까지 300m가 넘는다.
일월저수지의 첫 손님은 왜가리(황새목 / 백로과)

저수지 주변은 깊지 않은 모양이다. 왜가리가 그냥 서 있었... 
쌍안경으로 저수지를 둘러보니까 새들은 저수지에 고루 퍼져있는 게 아니고 갈대숲 쪽에만 모여 있어서 운동할 게 아니면 굳이 저수지를 한 바퀴 돌 필요가 없었다. 이쪽에서 보고 왔던 길 돌아서 반대편으로 가면 끝. (개꿀)

일월공원은 올림픽공원에 비해 야생화 종류가 다양하지는 않았다. 산책로 주변에 자생한 야생화 몇 종이 있을 뿐이었다.

서양민들레(국화목 / 국화과)
토끼풀(콩목 / 콩과)의 꽃. 어릴적 이 꽃으로 반지를 만들던 기억이...
흰뺨검둥오리(기러기목 / 오리과)

바람이 어찌나 세게 불던지 호수에도 물결이 일 정도... 오리들도 가만있으면 호수 주변으로 밀려나 버렸다.

물닭(두루미목 / 뜸부기과)의 발은 처음 봄.
뱀딸기(장미목 / 장미과)
물닭의 이마가 너무 환하게 빛나서 눈이 부심.
엇! 거리가 좀 됐지만 새끼를 업고 있는 뿔논병아리(논병아리목 / 논병아리과) 발견!
새끼 한 마리를 업고 있었는데 새끼가 정말 많이 자란 모습이었다.
등에 저렇게 업혀 있는 모습이 너무 재밌다.
호수 주변으로 가끔 오기도 한다는데 이날은 갈대 부근에만 머물렀다.

50m가 넘는 거리라 더 자세히 볼 수는 없었지만 꽤 자란 새끼를 업고 호수를 돌아다니는 모습이 너무 신기했다. 그런데 새끼는 어떻게 어미의 등에 오르게 됐을까? 어미가 등에 올라오라고 신호를 주는 걸까? 그렇다면 의사소통이 가능한 뭔가를 가지고 있는 걸까? 버스를 타고 오면서 혼자 이런저런 생각을 해봤는데 당연히 답은 알 수 없었지만 알면 알 수록 새들의 세계는 놀라움의 연속이다.

뿔논병아리의 생존 전략 때문에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어릴 적 업어주던 자식들을 생각하니 어미의 노고가 느껴진다...
그 와중에 뒤에 있던 논병아리(논병아리목 / 논병아리과) 사냥에 성공!
얘는 다른집 새끼다.
이마에서 새로운 깃털이 자라는 게 보임.
두 녀석이었는데, 어미가 잠수하자 얌전히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부담스러웠는지 물가에서 중앙쪽으로 슬슬 헤엄쳐 감.
이때 사냥에 성공한 어미 등장!
주위를 둘러보더니 저 멀리 새끼가 보이자 그쪽으로 헤엄쳐 갔다.
한참을 잠수해서 힘들 법도 한데 부리나케 새끼에게 가는 모습이 뭉클함...
새끼 한 녀석이 어미에게 달려옴.
어미를 만나자마자 잡아온 물고기를 덥석 받아먹었다.
나는 새끼가 물고기를 놓칠까봐 가슴 졸이며 지켜봤다...
저 큰 걸 삼키겠다고 꾸역꾸역 밀어 넣음...
새끼가 먹는 모습을 끝까지 지켜 보는 어미의 모습에서 모성이 느껴졌다.

뿔논병아리를 다시 보게됐다. 업어주고, 힘들게 잠수해서 먹이를 잡아다 먹여주고...

잠수하는 법과 사냥하는 법 등을 다 배우면 독립한다는데 3개월 정도 걸린다고 함. 어부바는 암수가 번갈아 가면서 하는데 수컷이 더 오래 업어 준다고 하며, 어부바 안 하는 쪽이 먹이를 사냥해서 새끼에게 먹인다고 한다. 잡지식.

아우 깜짝이야... 갑자기 날아온 흰뺨검둥오리(기러기목 / 오리과)
나한테 불만이 있는지 빤히 쳐다 봄. 안 그래도 갈 거다.
중대백로(황새목 / 백로과)
얘는 물가에서 사냥 중이었다. 사람을 별로 신경 안 씀.
누군가의 둥지였을 듯...

처음 있던 곳의 반대편은 갈대밭 바로 옆이었는데, 물닭과 뿔논병아리 여러 쌍이 포란을 하고 있었다. 여기서 뿔논병아리와 물닭의 둥지를 처음 봤는데 너무 신기했다.

잠깐 일어선 뿔논병아리 덕분에 둥지의 알을 볼 수 있었다.
해오라기(황새목 / 백로과)
물닭의 둥지가 뿔논병아리의 둥지보다 훨씬 높았다. 더 안전해 보임.
다른 물닭 부부도 열심히 둥지를 만들고 있었다.
포란 중인 뿔논병아리.

뿔논병아리의 둥지는 낮아서 물에 젖어 있었는데 저 상태로도 알을 품을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 반면에 물닭의 둥지는 높이 만들어서 뽀송뽀송해 보였는데 훨씬 안락해 보였다. 그래도 뿔논병아리는 새끼를 업어 주니까 비긴 걸로...

중대백로(황새목 / 백로과)
흰뺨검둥오리(기러기목 / 오리과)

1시간 정도 머물다 돌아 왔는데, 오래 있지는 않았지만 오랜만에 재밌는 탐조였다. 카메라와 쌍안경을 메고 있으니까 카메라 든 아줌마들이 막 반갑게 인사해 주셔서 더 좋았다.

서울로 이사오기 전 어린시절을 보냈던 수원. 지금은 알아볼 수 조차 없이 변했지만 새 때문에 다시 찾게 될 줄이야... 맨날 같은 장소만 가다가 새로운 곳을 와 보니까 또 다른 곳도 가보고 싶어졌다. 다음엔 어디를 가 볼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