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나긴 장마가 형식적이긴 하지만 드디어 끝났다! 얏호! 이제부터 오는 비는 집중호우라고 부르겠지...
무리한 탐조로 끙끙 앓아누웠더니 아내의 감시가 삼엄해서 탐조라는 얘기도 못 꺼내고 있었다. 비도 그쳤으니 새들이 잘 있나 보러 가야 하는데... 이런저런 핑곗거리를 찾다가 산책을 다녀오겠다는 핑계로 쏜살같이 도망 나옴.
도망쳐서 도착한 곳은 올림픽공원. 이곳만큼 산책하기도 좋고 새 보기 좋은 곳도 없을 듯.
안내판 좀 닦지... 그래도 더러운 안내판 덕분에 호수가 아니고 해자였다는 걸 알게 됐다. 잡지식 추가.
구름이 많아서 해가 나왔다 들어갔다 했지만 엄청난 폭염이다. 이 더위에 외국 애들은 4인 자전거를 신나게 타고 다녔다. 뭐 하는 애들인가 했더니 세계 스카우트 잼버리 때문에 우리나라에 온 아이들인 모양.
오늘도 평화로운 몽촌호수를 지나 평소 코스와는 반대로 곰말다리를 건너 몽촌토성 쪽으로 돌아봤다.
이쪽은 몽촌토성을 크게 돌아서 가는 코스로 거의 산책길로 되어있어서 '서울의새'는 가지 않는 코스. 오늘은 탐조가 아니라 산책이 목적이라 잘 포장된 평지 위주로 다닐 생각이라 이 코스를 선택했다.
매미소리는 여름의 절정을 알리는 소리지만 너무 시끄러워서 새소리가 묻혀버려서 새를 찾기가 힘들다.
날도 더운데 새도 안 보여서 잠시 쉬려고 앉은 벤치 위에서 시끄럽게 울어대는 참매미를 발견.
이 나무에만 여러 마리가 있는 거 같다. 주위 나무에도 온통 매미소리. 오늘 새 찾기는 힘들겠다.
대륙검은지빠귀가 까치에 쫓기면서도 먹이를 사냥하고 있었다. 평지는 까치들이 모두 점령을 해서 먹이 구하기가 쉽지 않은가 보다. 나무 위에 있던 게 새끼들인지는 모르겠지만 더위에 사냥하랴 까치 피하랴 고생이 많았다.
땅도 살피고 나무 위도 살피느라 두리번 두리번거리면서 걷는 내가 신기했나 보다. 외국인 아줌마가 나를 뚫어져라 쳐다본다. 살짝 멋쩍어지려는데 나무에 붙어 있던 청딱따구리 발견! 올림픽공원에서는 처음 본다.
나무를 요리조리 타던 청딱따구리가 갑자기 어디선가 들리는 울음소리에 긴장을 하는 거 같았다. 다른 청딱따구리가 있나? 생각하고 있는데 갑자기 다른 녀석이 하나 날아왔다.
두 녀석이 머리를 좌우로 흔들면서 춤을 추는 게 신기해서 쳐다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싸움을 시작했다.
둘이 날아다니며 푸다닥 하더니만 다시 날아온 청딱따구리들. 나무를 사이에 두고 또 머리를 흔들며 서로 위협을 한다.
그런데... 얘들 상황이 너무 웃겼다. 둘이 열심히 싸웠는지 한 녀석은 입에 깃털이 붙어있고 한 녀석은 머리에 깃털이 빠져있다. 아마 입에 깃털을 물고 있는 녀석이 머리를 한 대 쪼았나 보다. 아... 웃으면 안 되는데 웃음이 난다... 푸흡...
도끼나 다름없는 부리로 머리를 쪼인 녀석은 정말 아팠겠다. 그래도 둘이 계속 대치를 하다가 머리를 쫀 녀석이 날아갔다. 한 대 얻어 맞기는 했지만 이 나무는 머리 깃털 빠진 녀석 차지다.
실컷 청딱따구리들 싸움을 구경하다가 평온이 찾아오자 나도 발길을 옮겼다.
숲에 살짝 들어가 봤지만 박새 소리만 간간이 들릴 뿐 새를 찾기 힘들었다. 오늘은 산책이 목적이라 더 깊이 들어가는 건 포기했다. 슬슬 공원 입구로 돌아가는데 몽촌토성 언덕에 꿩처럼 생긴 녀석 발견.
입구로 나오면서 암컷 꿩도 보고 파랑새도 보고 다양한 녀석들을 만날 수 있었다.
몽촌호수에서는 왜가리 한 마리가 까치 수십 마리에게 쫓겨 다니고 있었는데 깡패 까치들을 좀 어떻게 해야 하지 않을까...
산책을 가장한 탐조가 되었지만 짧은 시간이라도 많은 녀석들을 만날 수 있어서 아주 좋았다. 다음 주에는 멀리 탐조를 가야 하니까 아내 눈치를 보면서 몸 관리를 좀 해야 할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