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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찰기록/자연 관찰기

[2024년 5월 11일] 고창, 영광 여행 - 뿔제비갈매기

by 두루별 2024. 5. 15.

4월 초였던 듯. 겨울에 올림픽공원에서 자주 뵙던 어르신 한 분을 오랜만에 뵀는데, 고창으로 뿔제비갈매기를 보러 오라고 하셨다. 그 근처에서 농사를 지으시나 보다 했더니 그건 아니라고... 그렇게 멸종위기생물 1급인 뿔제비갈매기를 보러 가야지 가야지 가야지... 하다가 한 달이 훌떡 지나버림.

어르신과의 약속은 이미 물 건너갔고... 마냥 미룰 수는 없어서 5월 초에 계획을 세웠는데 폭우로 취소. 이번주도 오후엔 비 예보였지만 낮엔 그럭저럭 구름만 가득할 거 같아서 아내를 살살 꼬셔서 새벽에 고창 구시포해수욕장으로 속옷 한 장 챙겨 들고 무작정 출발했다. 

'알밤'이라는 이름이 귀여워서 들른 휴게소. 그런데 밤이 아니라 슬라임이 밤 코스프레 한 거 아녀?...
낚여서 밤빵도 샀는데... 맛은 많이 반성하셔야 할 듯...
3시간 반 만에 고창 구시포해수욕장 도착! 우어 멀다...

이렇게 장거리 운전은 거의 10년 만인 듯... 일찍 출발해서 오는 바람에 이른 아침인 해수욕장엔 사람이 별로 없었다. 모래사장이 있는 해수욕장은 아니고 단단한 뻘로 이루어진 해변이었는데, 동네 주민 분들은 조개를 잡고 계셨다.

저 멀리 도로가 연결된 작은 섬에 있던 등대
간조가 얼마 안 남은 시간이라 물은 멀리까지 빠져있었고, 저 멀리 갈매기가 열라 많이 있었다.
해수욕장에서 도요를 볼 줄이야... 어쩐지 도요 소리가 들리더라니...
중부리도요(도요목 / 도요과)
일부 갈매기들은 쉬고 있었는데 갈매기는 연차별로 다 알아야 해서 어렵다... 잘 모르겠음...
여름에 갈매기를 봤는데 모르겠으면?? 괭이갈매기(도요목 / 갈매기과)다. 겨울은? 재갈매...
1cm나 될까? 아주 작은 엽낭게(십각목 / 콩게과)
중부리도요가 이곳 저곳에서 돌아 다니고 있었다.
갈매기들 사이에 검은머리물떼새(도요목 / 검은머리물떼새과)도 여럿 있었다. (이분은 2급)
아 어려워... 색이 왜저랴... 모르면 괭이갈매기로...
제방위로 올라가서 엄청난 바람을 맞으며 한 놈씩 갈매기를 확인하기 시작...
이것들 점점 더 늘어남... 거기다 잠시도 가만있지를 않음... 뿔제비갈매기 찾기 어렵다...
그 와중에 중부리도요가 게 사냥에 성공!
저어새(황새목 / 저어새과)도 있었다. 근데 저렇게 해서 언제 잡냐고... 보는 내가 다 답답...
어라??? 금방 한 마리 잡아서 꿀떡...
금방 또 잡음... 미안하다... 내가 몰라 봤다...

나는 그동안 저어새가 멸종위기종(이분도 1급)이 된 이유를 사냥을 대충 해서 그렇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에 확실히 알았다. 사냥 열라 잘함. 인간들이 서식지 파괴하고 알 훔쳐 먹어서 멸종위기에 몰린 거다... 나부터 반성해야지... ㅠㅠ

내 프로필 사진인 검은머리물떼새도 얼른 개체수가 늘어야 할 텐데... 그래도 2급이라 다행.
검은머리흰죽지(기러기목 / 오리과)도 아직 있었네...
오홍! 오랜만에 만난 갯강구(등각목 / 갯강구과). 제주도 이후 처음이다.
주차장 옆 공터 풀밭에서 귀여운 녀석 발견.
옆의 어미를 보니... 검은머리물떼새 새끼였다.
어미 중 한 마리가 새끼를 돌보고 다른 한 마리는 먹이를 물어왔다.
아웅... 진한 모성이 느껴져서 잠시 울컥함...

검은머리물떼새가 있는 곳은 다행히 번식지로 보호받고 있었다. 나도 멀리서 망원으로만 지켜봤지 가까이 가지는 않았는데, 사진 찍으러 오신 분들이 모두 거리를 잘 지켜주셔서 괜히 뿌듯했다.

참새(참새목 / 참새과)도 육추중이었다.
잠깐 쉬다가 다시 갈매기 감시하러 나왔는데 바람이 더 심해짐... 제방위라 더 심한 거 같다.
갈매기는 안 보고 저어새를 보고 있었는데 이쪽저쪽으로 분주히 돌아다녔다.
바람에 떠 밀려 다시 주차장으로 돌아 오는 길에 슬쩍 검은머리물떼새 훔쳐 보기.
귀여운 녀석... 바닥에 엎드려 있으면 흙이랑 구분이 안됨.
어미가 나를 경계하는 거 같아서 재빨리 돌아옴.
제방 반대쪽은 바람이 좀 덜했는데 백로 한 마리가 돌아 다니고 있었다.
근데 덩치가 좀 많이 작았다... 머리에 깃도 많고... 음?? 머리깃???
헐... 노랑부리백로(황새목 / 백로과)다!! 얘도 멸종위기 1급. 아주 귀한 분이다.
작년 5월에 매향리에서 보고는 처음이다.
테트라포트 위에 작은 도요들이 있었는데 위에 갯강구가 더 커보임...
노랑발도요(도요목 / 도요과)였다.
좀 가까이 있던 녀석. 얘도 게를 잡았다.
붉은발도요(도요목 / 도요과)도 한 마리 발견.
노랑발도요랑 나란히 다니니까 구분하기 힘듬.
다른 집 자식을 만남. 반대편 공터에 있던 가족의 자제분이다.
이분이 부모님. 사실 옆집이랑 구분 못함...

갈매기고 뭐고 바람이 너무 심하게 불어서 머리털이 다 벗겨질 판이다. 쌍안경으로 갈매기를 훑어보려고 해도 바람이 너무 심해서 시야가 고정이 안된다. 오늘은 안 되겠다 포기... 숙소 잡고 내일 다시 찾아봐야겠다.

그렇게 차로 돌아왔는데, 더웠는지 창문도 열어 놓고 양말도 벗은 채 편하게 앉아서 휴게소표 오징어를 먹고 있던 아내가 나를 보고는 소스라치게 놀란다. 아유 깜짝이야 내가 더 놀랐다. 근데 왜 놀란 걸까?

여차 저차 해서 일단 숙소 잡고 쉬어야겠다고 말하자 고새 다 예약해 뒀단다. 식당도 숙소도. 놀고먹기만 한 게 아니었나 보다. 일단 철수~ 차를 돌려서 다시 해수욕장 쪽으로 나왔는데 오후가 되니까 사람들이 많아졌다. 날이 안 좋은데도 많이들 왔다. 이왕 온 거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둘러볼 생각으로 쌍안경만 들고 해변으로 내려갔는데...

요렇게 생긴 녀석이 바로 딱 보임.
으아아아!! 뿔제비갈매기(도요목 / 갈매기과)다!! (멸종위기야생생물 1급)
차로 달려와서 아무 카메라나 잡고 해변으로 다시 튀어옴.
하필 캐논을 잡았냐고... 어쩔 수 없다 날아갈지도 모르니까 얼른 촬영을...
얘는 구분을 못할 수가 없다. 그냥 딱 보임. 너무 튀는 외모다.
해변을 이렇게 어슬렁거리고 있는데 엉뚱한 데를 뒤지고 있었던 거...
주위의 괭이갈매기와 비교해도 굉장히 작은 체구다.
최대한 살금살금 계속 접근 중... 다행히 아무도 나에게 관심을 주지 않았다.
오늘 볼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 못 했는데... 이렇게 만나다니 감격이다...
이때 갑자기 날기 시작! 우와... 꼬리가 정말 제비꼬리다...
날개도 제비 날개... 비행속도 장난 아님.
날아갈 줄 알았더니 방향 전환~!
다시 내려 앉더니 여기저기 긁기 시작.
아유 내가 시원하게 긁어 주고 싶네...
실컷 긁고는 반대편 해변으로 날아가 버렸다.
10분여의 짧은 만남이었지만 강한 인상을 남긴 녀석...

전 세계 생존 개체수는 100마리 미만으로 추산된다는 뿔제비갈매기. 그중에 한 마리를 본 거다. 잘 번식하고 잘 보존해서 다음엔 100만 마리 중 한 마리를 봤으면 좋겠다.

해변에 다시 들러보기 잘했지 그냥 갔으면 영영 못 봤을지도 모른다. 마음을 비워야만 볼 수 있다고 하던데 마음을 비웠었나 보다. 못 보면 다음에 보지 뭐 이런 생각이었던 듯... 오늘 멸종위기야생생물 1급만 3종을 봤다. 저어새, 노랑부리백로, 뿔제비갈매기... 모두 멸종 위기에서 후딱 벗어나기를!!

목표종도 봤으니 바로 서울로 올라갔어도 됐지만 오랜만에 아내와 여행다운 여행을 해보기로 했다. 먼저 아내가 가보고 싶다는 영광의 해안도로에 있는 카페를 찾아갔는데 이름이 보리다. 카페보리.

카페 앞에 이렇게 보리밭이 조성되어 있었다. 보리밭 너머 바다와 하늘이...
가짜 아니고 진짜 보리다. 보리밭은 정말 오랜만에 본다...
이렇게 바다를 보면서 차를 마시게 되어있었는데 아내가 아주 좋아했다.
당당하게 나타난 고양이 시리. 카페에서 키우는 세 마리 중 한 마리라고...
커피 맛은 별로였지만 분위기가 다했다. 강추다.

오랜만에 아내와 여유 있는 시간을 보내고는 점심 겸 저녁 식사를 위해 호텔 근처인 법성포로 향했다. 카페에서는 차로 30분 정도 거리였는데 가는 길도 절경이었다. 영광이 이렇게 아름다웠구나... 여행 자체를 별로 안 하고 살아왔는데 더 늦기 전에 아내와 여러 곳을 다녀보고 싶다.

영광에 왔으니 식사는 당연히 굴비 정식이다. 유명하다는 식당은 사람들이 많을 거 같아 평이 괜찮은 별로 알려지지 않은 식당으로 정했는데 반찬 하나하나 다 맛있었고 굴비 매운탕은 처음 먹어봤지만 담백한 게 너무 좋았다. 아침도 거르고 늦은 오후에 첫 끼라 허겁지겁 먹고 보니 남은 건 굴비 머리뿐...

보리굴비 맛남.

식당 사장님, 종업원 분들 모두 엄청 친절하셔서 또 방문하고 싶어졌다. (예전엔 서울도 정말 친절했는데...)

밥을 먹고 나오니까 웬일로 예보대로 비가 왔다. 기상청이 중계가 아닌 예보를 제대로 할 때도 있구나. 중계나하는 기상청은 없애 버려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 중 하난데 이 얘기는 정말 할 말이 많으니 나중에 한 번 기회가 되면 하기로...

아내가 예약한 숙소는 저렴한데도 시설이 너무 좋았다. 한껏 들뜬 아내. 자랑하느라 조잘대는 아내가 너무 귀여웠다.

다음날 아침. 밤에 비가 엄청 왔다는데 나는 세상 모르고 쿨쿨잤다.
그냥 서울로 올라가기 아쉬워 다시 들러본 구시포해수욕장 이른 시간이라 사람이 하나도 없었음.

혹시 한 번 더 뿔제비갈매기를 볼 수 있을까 싶어 다시 들러본 구시포해수욕장. 사람은 없고 괭이갈매기들만 쉬고 있었다. 밤에 비가 많이 왔다는데 얘들은 그 비를 다 맞았을 거 아녀... 쯧쯧...

중부리도요가 오늘도 열심히 먹이를 찾고 있었다.
제비끼리 싸우길래 찍어 봤더니 귀제비(참새목 / 제비과)와 제비가 투닥거리고 있었다.
깃털 가지고 싸우는 건가??
제비가 열심히 따라 가는데 속도에서 상대가 안됐다. 귀제비 열라 빠름...
아항~ 제비는 꼬리에 흰 줄이 있구나. 처음 알았다. 귀제비는 없음.
그 빠른 속도로 날다가 이렇게 뒤집기도 한다.
제비도 빠른데...
귀제비는 총알이다. 장애물 사이를 지날 때도 속도 줄이고 그런 거 없다.
하지만 제비도 엄청난 속도로 낮게 날면서 먹이를 찾는 걸 보면 정말 대단하다.
반사 신경이 엄청난 거 같음. 나 같으면 벌써 돌에 부딪혀서 사망이다...
바닷가 사는 참새는 먹이도 바다에서 얻는 모양. 뭔가를 찾아서 먹고 있었다.
멀쑥한 괭이갈매기(도요목 / 갈매기과)

잠깐 둘러 봤지만 뿔제비갈매기는 보이지 않았다. 더 기다려 보고 싶었지만 차 막히기 전에 얼른 올라가야 함. 일단 출발.

해안가를 벗어나자마자 찌르레기(참새목 / 찌르레기과) 발견.
얘들도 육추 중인지 부지런히 벌레를 잡아다가 도로 표지판 사이의 구멍으로 쏙~
참새도 전신주 구멍에 들락날락 하고 있었다.
아침 먹으러 들른 도로변 순대국밥집. 고기가 국물보다 많았다.
김치도 세 종류에 고추는 맵지만 엄청 맛있어서 눈물 흘리며 다 먹음.

국밥에 들어있는 고기도 엄청 많은데 맛 보라며 썰어주신 순대와 간, 염통도 거의 1인분 수준... 아내 국밥의 고기도 먹느라 밥은 남겼지만 고기와 국물은 모두 완식. 엄청 맛있었다. 아무 식당이나 들어가도 맛집인 영광. 시골의 도로변에 있는 민가를 개조한 허름한 식당인데도 직원분은 또 얼마나 친절하던지... 또 들르고 싶어졌다.

엄청 먹고도 안 졸고 서울까지 잘 올라옴. 밤에 잠을 설쳤다는 아내는 쿨쿨 잤지만 나는 잘 버텼다... 이렇게 별 쓸데없는 얘기만 가득한 영광과 고창 여행기 끝. 여행 목적은 뿔제비갈매기를 보는 거였지만 뜻밖의 수확이 많았다. 다음엔 또 어디를 가볼까? 진짜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