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재때까치」가 있다는 소식에 다른 선생님들과 함께 방문했었던 당진의 삽교천. 재때까치는 못 만났지만 넓은 갈대숲에 쑥새와 북방검은머리쑥새 등이 이곳저곳에서 돌아다니고 있었다. 하지만 여럿이 함께하는 탐조에서는 목표종이 아니면 흔새는 외면당하기 때문에 작은 새를 좋아하는 나에겐 아쉬운 순간이었다.
그래서 흔새를 보러 나 혼자 아침 일찍 당진으로 출발!
평일이라 차가 막힐까 봐 일찍 출발했더니 도착하니까 해가 뜨기 시작.
오는 길에 ChatGPT에게 날씨를 물어봤더니 오후에 눈이 살짝 날릴 예정이지만 오전은 맑을 거라고 한다. 기분 좋은 출발!
농로는 며칠 새 내린 눈으로 빙판이었다.
간신히 삽교천에 도착해서 천천히 둘러보기 시작. 혼자 오니까 급할 게 없음...
해가 뜨면서 역광일 거라곤 생각도 못했다... 그래도 너무 멋진 흰 꼬리수리.
갈대숲에서 떼로 날아다니고 있던 북방검은머리쑥새들.
이거지... 카메라는 잠시 내려놓고 쌍안경으로 신나게 관찰. 언뜻 검은머리쑥새도 섞여 있는 거 같은데, 갈대 사이를 요리조리 빠르게 움직이는 녀석들 때문에 자세히 보지는 못했다.
얼어붙은 삽교호에서 잠을 자고 있던 큰고니와 기러기들. 얼음 위에서 저렇게 잠도 자는 건 처음 알았다.
얼음이 얼지 않은 곳에선 얼음을 헤치며 먹이 활동도 하고 있었는데, 기온은 영하 13도였... 보기만 해도 춥다...
삽교천은 생각보다 길고 넓었다. 천천히 이동하면서 갈대숲을 둘러봤는데, 태양의 고도가 높아지니까 기온이 오르기 시작. 따뜻해져서 행복했지만 엄청난 아지랑이 때문에 촬영은 물론 관찰도 쉽지 않은 상황이 됐다. 뭔가 등가교환의 느낌...
얼음 위에서 자고 있던 큰기러기들이 날아올랐다. 해가 뜬 지 언젠데 이제 일어나다니...
슬금슬금 이동하다 꿩님 발견. 차가 멈추지 않자 경계만 할 뿐 도망가지 않았는데 차를 멈추자마자 바로 도망감.
목표 종 없이 이렇게 눈에 보이는 녀석들을 보는 거 아주 재밌다. 어떤 녀석을 만날지 기대됨.
그러다 만난 녀석. 처음엔 쑥새인 줄...
보고 싶었던 붉은뺨멧새를 여기서 만날 줄이야...
그것도 수많은 북방검은머리쑥새 무리에 딱 한 녀석이 섞여 있었다. 감동이다...
재밌는 건 서로 영역이 있는지 구역마다 보이는 새들이 달랐다. 한참 북방검은머리쑥새만 보이더니 갑자기 노랑턱멧새가 보이는 식... 정말 각자의 영역이 있는 걸까?
그래도 촉새가 귀하긴 했다. 한두 마리 보이는 게 전부...
아지랑이가 점점 더 심해졌다. 아지랑이 때문에 상이 서질 않음...
갈대숲에 북방검은머리쑥새가 몇 마리나 있을까 궁금해지기 시작...
드물지만 검은머리쑥새도 볼 수 있었다. 작은 무리로 갈대숲에서 먹이 활동 중.
소리는 엄청나게 들리지만 갈대 사이로만 다녀서 촬영이 쉽지 않았던 붉은머리오목눈이. 도심 공원이 혜자다...
고라니 두 녀석이 도망도 안 가고 나를 빤히 바라봤다. 나도 녀석들이 놀랄까 봐 이동하면서 촬영하는 신공을 발휘.
때까치는 영역이 확실한 거 같다. 넓은 지역이지만 자기 구역에 다른 때까치가 들어오면 저 멀리서 날아와서 쫓아 버림.
이렇게 많은 북방검은머리쑥새를 보기는 처음. 봐도 봐도 예쁜 녀석들...
얘들도 거리를 제법 주는 녀석들이 있었는데, 무리가 모두 날아가도 혼자 남아 있는 녀석들 중 포즈를 잘 취해주는 고마운 녀석들이 종종 있었다. 내가 신기해서 그른가???
다른 곳에서 만난 꿩은 보자마자 열라 도망감.
천천히 둘러보다 보니 벌써 정오. 일기 예보를 보니 오후 늦게는 눈이 좀 올 모양이었다. 당진까지 왔는데 태안에 들러서 붉은부리흰죽지를 빠르게 보고 눈 오기 전에 얼른 올라가야겠다. 태안으로 이동!
태안에 도착해 보니, 붉은부리흰죽지가 흰뺨검둥오리들과 함께 놀던 저주지가 강추위에 꽁꽁 얼어 있었다. 오리들은 흔적도 안 보임. 혹시나 해서 바다 쪽으로 이동했는데, 흰뺨검둥오리들은 바로 앞 갯벌에 있었지만 붉은부리흰죽지는 저~~ 멀리 있었다.
지난 번은 정말 가까웠던 셈. 썰물인지 물은 점점 더 빠져나가고 있어서 흰뺨검둥오리들도 먼바다로 나가 버리고...
그나마 가까이 있던 바다비오리를 관찰하다 일단 점심을 먹기로 했다. 기다리면 가까이 올지도 모르니까...
아내가 만들어 준 파스타를 바로쿡으로 데워 먹을 야심 찬 계획이 대실패로 끝났다. 바로쿡에 들어 있던 발열체가 동작을 안 함... 여분으로 하나 더 가져왔는데 둘 다 잠깐 열을 내다 꺼져버렸다. 망할... 차디찬 파스타를 조금 먹다 포기...
근데 갑자기 눈이 펑펑 오기 시작... 당황해서 급히 정리하고 철수해야 했다. 근데 눈발이 조금 날릴 거라고 안 했나??
서울로 올라오는 내내 눈발은 점점 더 강해지고... 서울에 들어 서자 앞이 안 보이게 쏟아졌다.
ChatGPT에게 눈이 조금 온다더니 왜 많이 오냐고 따지니까, 날씨 예보가 변덕스럽게 변해서 그런가 보다나... 이제 대화하는 수준은 사람이다. 정말 튜링 테스트 통과할 듯...
폭설을 뚫고 간신히 집에 도착하고 자료를 살펴보는데, 아침에 뜨는 해를 바라보며 도착한 아산과 눈 내리는 태안을 떠나 집에 돌아온 게 무슨 모험을 한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도 귀요미들을 하루 종일 볼 수 있어서 행복한 하루였음... 끝.
근데 아산 살고 싶다... 진짜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