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갈매기 도감을 구입할지 누가 알았겠어...
작년에 '서울의새' 선생님들과 동해에 갔을 때만 해도 갈매기를 관찰하는 선생님들이 도저히 이해가 안 갔던 사람이었다.
나한테 갈매기란 이런 상태였으니까...

갈매기인 것과 아닌 것을 구별하는 정도의 아주 낮은 능력이 있던 내가 갑자기 갈매기가 궁금해지기 시작. 좀 더 자세히 알아보고 싶어서 도감을 찾아봤지만 국내에 갈매기 관련 도감은 없었다. 사실 기대도 안 했다...
만만한 일본 아마존을 뒤져보니 일본은 몇 종류의 갈매기 도감이 있었는데, 그중에 제일 눈에 띄는 책 발견! 갈매기 식별도감이라니... 내가 딱 원하던 거... 식별도감이라는 말에 꽂혀서는 바로 구입하고 며칠 만에 총알 배송.



일본어는 가타카나와 한자로 대충 게임 대사 정도 읽는 수준이라 번역기 돌려가며 읽어 봤는데 충분히 읽을만했다. 내용도 알차고 인접한 국가라 도래하는 갈매기도 비슷한 모양. 내가 원하는 갈매기는 대부분 수록되어 있었다.
종 별로 생태 정보와 분류 그리고 변환 깃에 대한 설명 등이 상세한 사진과 함께 설명되어 있어서 다른 유사한 갈매기와 비교해 보기도 좋고 촬영해 온 사진과 비교하기도 좋아서 종을 구분하고 공부하는데 아주 쓸만한 도감이었다.
이 도감 덕분에 정보를 찾다가 알게 된 사실인데, 우리나라에 도래하는 '줄무늬노랑발갈매기'는 주로 'Taimyr Gull'이란 종이라고 하는데, 이 Taimyr Gull을 Lesser Black-backed Gull의 아종으로 보는 견해도 있었지만 지금은 대부분 Larus fuscus heuglini x Larus vegae vegae 교잡으로 분류한다고 한다. 여기서 Larus fuscus heuglini는 '줄무늬노랑발갈매기'의 아종이고 Larus vegae vegae는 재갈매기를 뜻한다. (이하 Larus fuscus heuglini는 heuglini, Larus vegae vegae는 vegae라고 표기함)
heuglini는 영문명 Heuglin's Gull이고 국명은 '줄무늬노랑발갈매기'다. 이 heuglini도 국가에 따라 별도 종으로 보는 견해도 있고 아종으로 분류하는 견해도 있다고 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Larus fuscus의 아종인 Larus fuscus heuglini가 아닌 Larus heuglini라는 별도 종으로 분류한다. 그래서 '줄무늬노랑발갈매기'라고 하면 우리나라에서는 Larus heuglini를 뜻한다.
그럼 우리가 흔히 보게되는 Taimyr Gull은 뭐라고 불러야 할까?
지금은 목에 굵은 잿빛 무늬가 있고 발이 노란 재갈매기를 통칭해서 '줄무늬노랑발갈매기'라고 부르고 있지만, 엄밀히 말하면 heuglini x vegae 교잡으로 분류하고 등록해야 한다. heuglini가 상당히 드물게 도래하는 종이다 보니 eBird에 이 Taimyr Gull을 줄무늬노랑발갈매기(Larus fuscus heuglini)로 등록하니까 Rare 표시가 떴던 것. 하지만 등록되는 줄무늬노랑발갈매기의 대부분이 교잡인 Taimyr Gull(taimyrensis)이었을 거다.
중랑천에만 가도 쉽게 볼 수 있는 줄무늬노랑발갈매기가 eBird에선 왜 Rare로 표시되는지 궁금했는데 한방에 이해가 됨...
※ 잡지식 : Heuglin은 Theodor von Heuglin으로 독일의 탐험가이자 조류학자라고 함.
지금까지 Taimyr Gull을 '줄무늬노랑발갈매기'라고 등록하고 있었는데 출생의 비밀을 알고 나니 현타가 온다. 그럼 아종인 heuglini와 얼마나 다르길래 아종 취급도 안 하는 걸까?
아래 사진을 보면 이유를 알 수 있음...

위 사진은 eBird와 iNaturalist에서 퍼온 사진과 내가 촬영(가운데)한 사진을 비교하기 위해 모아 놓은 것인데, 사진만 봐도 taimyrensis가 heuglini 보다 등이 더 밝은 것을 알 수 있다. 거의 재갈매기 수준... 영어 이름대로 Lesser Black-backed Gull이란 이름으로 부를 수 있는 건 사진으로 봐도 heuglini다.
도감 한 권으로 알면 얼마나 알겠어. 몇 장 읽어 보고 궁금했던 거 찾아보고 하면서 나름 재밌는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잡지식이 또 조금 늘어났달까? 해외의 다른 갈매기 도감도 찾아봐야겠다. 암튼 이 책 강추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