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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찰기록/자연 관찰기

[2025년 2월 24일] 이끼 동정(同定)의 험난한 여정

by 두루별 2025. 3. 5.

이끼 종류가 궁금해서 시작한 일이 점점 커지고 있다.

처음엔 이끼를 최대한 확대 촬영해서 모양을 보고 도감과 비교해서 이끼의 종류를 알아낼 계획이었지만, 이게 말처럼 쉽지 않다는 걸 바로 깨달음. 이끼는 형태가 다양하지 않고 거의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는 데다 잎을 확대해서 확인해야만 정확한 동정이 된다고 도감에도 나와 있었다.

그래서 일단 채집. 올림픽공원에 가서 눈에 띄는 이끼를 마구 채집해 왔다.

군체를 회손하지 않고 아주 조금만 채집
나름 샘플의 채집 상태를 꼼꼼하게 기록했다.

이끼 채집도 처음이라 나무줄기나 바위에 붙어 있는 이끼를 살살 떼어내는 것도 요령이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됐다. 어찌어찌 올림픽공원 이곳저곳에서 샘플을 채취.

이제 이 샘플을 가지고 동정을 해야 하는데, 이끼의 잎은 0.2~3mm 정도로 아주 작다. 이 작은 잎을 확인하려면 현미경이 필수. 10배 확대경으로 해보려고 했지만 어림도 없었다.

10배 확대경으로 본 이끼의 모습

사실 확대경으로는 어림없을 걸 이미 알고 있었다. 후훗...
그래서 전날 쿠팡에서 최첨단 현미경을 미리 주문해 뒀었다는 사실. 현미경 등장!!

무려 60배에서 180배 현미경
자체 LED 조명도 달려 있다

이 현미경을 보고 우리 집사람은 웃다가 허리를 접질림...
이게 장난감 같아서 우스워 보이지만 꽤 잘 보인다고...

이제 이끼에서 잎을 하나 떼어 내야 하는데 문제는 눈이 침침해서 1mm도 안 되는 이끼의 잎이 보이지 않는 거다. 고심 끝에 알리에서 30 배율이라고 속아서 구입한 5 배율 확대경을 집에 굴러다니는 클램프에 테이프로 고정.

앞으로 넘어지길래 뒤에 자석도 몇 개 붙여 주는 센스를 발휘. 꽤 쓸만한 확대경이 완성됐다.

확대경을 클램프에 고정하니까 양손이 자유로워짐

이제는 떨리는 손만 어떻게 하면 이끼에서 잎을 떼어 낼 수 있을 거 같다. 그런데 겨울이라 그런지 이끼들이 대부분 바짝 말라있었다. 이대로는 잎이 보이지도 않음... 

왼쪽 부터 스포이드, 수조, 현미경, LED 조명

급조해서 준비한 첨단 이끼 동정용 장비 중에서 수조를 이용해서 이끼를 불리기로 했다.

수조에 물을 받고 이끼를 투척

오오!! 수조에서 1분 정도 불리고 나니까 잎이 하나하나 펴지면서 형태가 보이기 시작! 
덜덜 떨리는 손으로 확대경을 보며 간신히 잎을 하나 떼어내는 데 성공했다!

아직 유리 슬라이드가 도착하지 않아 티슈에 슬쩍 올려놓았는데, 순간 내쉰 나의 콧바람에 눈에 보이지도 않는 이끼의 잎이 날아가 버림...(안돼!!!)

아오... TV에서 보면 연구원들이 다들 마스크를 쓰고 있던 데 그게 다 이유가 있던 거다...

한참만에 덜덜 떨리는 손으로 간신히 잎을 하나 더 떼어내는데 성공! 숨을 꾹 참고 티슈에 올려놓은 잎 위로 안약을 재활용한 스포이드로 물을 한방을 떨어트리고는 조심스럽게 현미경을 가져다 놓고 이끼를 찾기 시작!

60배율로 본 이끼의 잎

세상에... 9천 원짜리 현미경 개잘보임...

잎의 모양과 형태가 정말 잘 보였다. 현미경의 시야가 대충 1.1mm 정도 되니까 이번 이끼의 잎은 3mm 정도로 좀 큰 편임. 이런 정보를 바탕으로 선태류 도감을 뒤지면서 현미경 사진과 비슷한 잎을 가진 이끼를 찾기 시작!

도감에서 쉽게 찾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이게 또 쉬운 게 아니었다. 다들 비슷비슷해서 그놈이 그놈 같음. 거기다 도감의 사진은 어찌나 거지 같은지 알아보기도 힘들었다. 그렇게 하나하나 도감을 뒤지며 머리가 마비되어 갈 즈음 드디어 흡사한 모양의 이끼를 발견!! 보자마자 나는 확신할 수 있었다.

이 이끼는 들덩굴초롱이끼였다!! 꺄울!!!~

아... 뭔가 해낸 거 같은 이 뿌듯함... 역시 장비가 받쳐줘야 일이 되는구먼... 현미경은 이끼 동정에 정말 필수다 필수...

새를 처음 동정했을 때 보다 더 뿌듯했다. 잎 하나 떼는데 20분이나 걸렸는데 하나를 날려 버리고 다시 떼면서 꼭 성공해야 한다는 중압감이 동정 성공과 함께 모두 스르르 녹아버렸다. 해낸 거다!

혼자 열라 좋아했지만 몇 시간 동안 잎 2개 떼고 하나 동정했으니 효율은 제로다. 속도를 올릴 방법을 고민해야 할 시간. 거기다 도감에 실린 현미경 사진이 선명하지 못해서 비교하기가 너무 어려운데 이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지 고민 중이다.


여러 가지 난관이 있었지만 어찌어찌 해결하고 힘들게 첫 동정에 성공. 이제 지금의 프로세스를 더 보완해서 채집한 이끼를 모두 동정하는 게 목표다. 앞으로 어딜 가든 채집 장비를 들고 다니면서 이끼를 채집해야겠다. 너무 재밌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