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날은 검은멧새만 기다리다 끝.
하지만 함께 남아 있던 하루(닉네임)님은 해지기 직전 코앞에서 검은멧새를 촬영하셨다.
깃털이 하나하나 살아있는 엄청난 해상도의 사진... 개부럽...
반대쪽에 있던 나는 소식을 듣고 빛의 속도로 달려갔지만, 눈앞에서 사라지는 모습만 보고 말았다. 무려 10초 넘게 있었다는데 그걸 놓치다니... 도저히 억울해서 이대로 돌아갈 수 없었다. 항공권 다 미루고 하루 더 있기로...
나를 위해 하루 더 머물러 주신 하루님이랑 해장국에 술 한 잔 하며 다음 날을 기약했다.

하루 종일 굶은 후 먹는 해장국은 꿀맛.

이름은 까먹었는데 콩나물 무침과 수육 같은 것도 개맛있었다.

제일 가까운 숙소로 예약했더니, 이상한 여인숙 같은 모텔이...
전기도 잘 안되고 방도 추워서 덜덜 떨면서 잠을 자야 했지만 검은멧새만 본다면 이건 아무것도 아니다.
그렇게 자는 둥 마는 둥 아침 일찍 다시 검은멧새가 있는 곳으로 출발.

이른 아침이었지만 검은멧새의 소리가 들린다고 했다.
(탐조에 치명적이지만 난 한쪽 귀가 거의 안 들린다...)
아직 있다는 건 확인했으니까 일단 잠복에 들어갔다.
중간에 들뫼 선생님들도 오시고 많은 분들이 오셨는데,
정오가 다 되도록 아직 한 장도 촬영하지 못해서 점점 초조해지고 있던 그때...
하루님이 다급하게 근처에서 검은멧새 소리가 난다고 알려주셨다! 두둥......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숲을 바라보고 있는데 뭔가 바닥으로 툭! 하고 내려앉는 게 보였다!!

헛... 거...검은멧새가 틀림없다...
간신히 형태만 보였지만 확신할 수 있었다.
하지만 빽빽한 조릿대 사이로 촬영은 어림도 없었다.
이동하는 방향 쪽에 두 뼘 정도의 빈 공간이 있었는데 제발 그쪽으로 와주기를... 제발...제바알...

오오오오... 드디어 모습이 보이기 시작...

그렇게 기다리던 검은멧새(Grey Bunting)다!!!!!!!...

아아아아앙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드디어 만났다... 완벽하진 않지만... 그래도 만났다...

천천히 먹이를 찾으며 걷던 녀석...
나와의 거리는 6m 정도... 다행히 나를 전혀 의식하지 않았다.

정말 심장이 터질 거 같았는데,
거지 같은 소니 A1M2는 물체 인식이 꽝이라 눈에 초점을 맞춰 주지도 못했다.
가장 작은 스팟 초점(XS)으로 검은멧새를 수동으로 겨누면서도 앞쪽의 조릿대 잎으로 초점이 튈 때마다 숨이 멎는 거 같았다. 캐논 R1이었으면 눈에 초점을 맞춰줬을 텐데... 소니를 저주하며 어떻게든 초점을 유지시키려고 사투를 벌여야 했다.

그걸 알리 없는 검은멧새는 천천히 숲 바닥을 살피며 이동...

천천히 우측으로 이동하던 녀석은 등을 보이며 서서히 멀어지기 시작...



점점 멀어지는 모습을 끝으로 더는 숨을 참을 수 없어 벌떡 일어나고 말았다.
아오...... 찍었다아!!!
아직 보이는데 왜 멈추냐며 하루님이 이어서 촬영을...
결과가 어떻든 나는 만족했다. 어떻게든 담았다는 것에 안도가 밀려왔다.
소식을 들었는지 서울의새 선생님 두 분도 달려오셨는데,
내가 촬영한 장소를 양보하고 자리를 빠져나왔다. 나중에 이 분들도 촬영하셨다고..
그렇게 보고 싶었던 새를 봤고 촬영에 성공했다.
완벽한 성공은 아니지만 개인적으로 이 정도면 충분했다. 이제 끝이다...
이제는 여유 있게 주변을 돌아봤는데,

섬휘파람새도 그렇게 이뻐 보일 수가 없었다.

방울새도 이렇게 예쁜 녀석이었다니...
남아 있는 선생님들을 찾아다니며 훈수도 두고,
주변도 둘러보는 등 촬영한 자의 여유를 부리다 비행기 시간이 빠른 하루님이 먼저 떠나고 나도 현장을 빠져나왔다.
피로가 몰려왔다. 커피 생각이 간절...
어제 하루님과 커피를 마셨던 카페를 다시 방문.

혼자 달달한 케이크를 먹어 보기는 또 처음.
첫끼이자 혼자 하는 자축이었다. 세상에 이렇게 맛있는 케이크는 없을 거다...

꼬마 돌하르방도 득템.

돌아오는 비행기는 비상구 옆이라 다리 쭉 뻗고 올 수 있었다.
검은멧새를 보고 나니까 일이 술술 풀림...
이렇게 2박 3일간의 제주도 탐조 여행이 끝났다.
생각보다 너무 쉽게 만난 파랑딱새는 이국적인 파란색을 보여줬고,
이틀이나 잠복해서 촬영한 검은멧새는 생초보 시절부터 동경했던 대상이었는데 드디어 촬영까지 성공했다. 혹시 못 찍을까 봐 옆에서 나보다 더 걱정해 주시고 소리도 대신 들어주신 하루님이 아니었으면 촬영은 못했을 거다. 너무 감사함...
제주도에서 열심히 탐조해서 귀중한 자료를 공유해 주신 분들께도 감사를...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