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같던 날씨가 갑자기 추워지면서 덩달아 하늘도 맑아졌습니다. 정말 오랜만에 보는 청명한 겨울 하늘이었습니다.
문제는 이 맑은 하늘이 금요일에는 구름으로 덮인다는 거...
오랜만에 보는 맑은 날을 그냥 보낼 수가 없어서 당장이라도 조경철 천문대로 달려가고 싶었지만 평일에 가자니 다음날이 걱정이고, 하루 휴가 내고 다녀오자니 쓸데없이 바쁜 일들이 줄 줄이라 파란 하늘만 올려다볼 뿐이었습니다. 새로 들인 가이드 망원경을 붙여서 다양하게 설정을 바꿔가며 동그란 별상이 나오는 최적의 값을 찾아보고 싶은데 항상 시간이 문제네요. 왜 꼭 주말에는 구름이 끼는 건지...
하지만 곰곰이 생각을 해보니 가이드 테스트만 할 거면 굳이 멀리까지 갈 필요가 있을까 싶더군요. 서울에서도 H-Alpha 필터를 쓰면 가이드 테스트 정도는 할 수 있을 거 같았습니다. 혼자 끙끙거리며 고민한 끝에 날도 춥고 달도 떠 있었지만 이런 날을 그냥 보낼 수 없어서 결국 장비를 챙겨 옥상으로 올라갔습니다.
월령 10일의 달도 떠 있었지만 옥상의 조명도 환한 데다 주변 빌딩들의 불빛까지... 정말 최악의 관측장소였습니다.
이런 상태로 테스트를 할 수 있을까 싶은 와중에 오리온자리의 중요한 별들은 모두 잘 보였습니다. 날씨가 정말 좋았던가 봅니다.
기가 막히게도 북극성이 건너편 건물 바로 위로 보여서 극축 설정도 할 수 있었습니다. Pole Master도 잘 동작해서 한 번에 극축 설정도 끝내고 좋았는데 하필 마운트의 고도 클램프를 꽉 조이지 않는 바람에 경통을 올리면서 그 무게 때문에 덜컥하고 내려앉았습니다. 어째 시작이 문제없이 잘 되더니만...
극축을 다시 설정하려는데 이번엔 노트북이 그냥 꺼져버립니다. 이런 애플... 날씨만 추우면 배터리 광탈...
장비는 다 펴놨는데 누가 집어갈까 봐 두고 내려갔다 올 수도 없고... 고민하다가 극축은 그냥 포기하기로 했습니다.
달이 밝아서 가이드 망원경으로 가이드할 별이 보일지 알 수도 없는 상황이라 서둘러 가이드 망원경을 설치하고 ASIAIR와 연결을 했습니다.
옥상의 조명만이라도 좀 껐으면 좋겠는데 스위치가 어디 있는지 옥상을 다 뒤져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주위가 너무 밝았지만 요행을 바라며 가이드 카메라를 0.5초 노출로 설정하고 촬영을 해봤습니다.
오호~ 생각보다 별이 잘 보이네요! 정말 요즘 카메라들 감도가 참 좋습니다. 이런 열악한 환경에서도 별이 보이고 설정까지 할 수 있다니...
외국 RST-135 포럼을 보니까 '하모닉 드라이브'를 사용한 마운트는 오토 가이더 설정에서 RA, DEC 모두 Aggressiveness를 80% 이상으로 설정하는 것을 권장하고 있었습니다. MnMo(Minimum Move) 설정도 중요하지만 ASIAIR에서 지원하지 않기 때문에 아쉽지만 설정을 할 수는 없고요.
M-GEN의 경우도 가이드 카메라의 노출이 1초일 경우 Aggressiveness 값을 70~100% 사이에서 설정하라고 권장하고 있어서 그동안 ASIAIR도 80% 정도로 설정하고 사용하였습니다. 하지만 별이 예쁜 동그라미로 촬영되지 않고 길쭉한 타원형으로 촬영이 돼서 머리가 아팠던 거죠.
이 설정값들을 바꿔가며 테스트해서 동그란 별이 촬영되는 값을 찾는 것이 이날 테스트의 목적이었습니다. 그 전에 정말 촬영이 되나 확인을 해야 하니 M42 오리온 대성운을 30초로 한 장 촬영해 봤습니다.
엄청난 노이즈와 함께 오리온 대성운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30초로도 형태를 알아볼 정도는 찍히는군요. H-Alpha의 세계는 정말 신기합니다. 서울 한복판의 빌딩 숲 사이에서 밝은 달이 있는데도 이 정도로 나오는 것 자체가 저에게는 경이롭네요. 달만 없으면 H-Alpha는 서울에서 찍어도 되지 않을까 하는 유혹이...
시험 촬영을 해 보니 오리온 대성운 주위는 볼 만한 별이 별로 없더군요. 이 상태로는 테스트할 수가 없어서 베텔게우스(Betelgeuse)로 대상을 바꿔 테스트했습니다.
3분 노출로 베텔게우스를 촬영하면서 RMS Total이 가장 낮게 나오는 설정을 찾으려고 값을 계속 바꿔봤습니다. 여러 장 촬영하면서 확인해 보니 DEC 60%, RA 80%에서 평균적으로 값이 가장 괜찮더군요.
노출 시간과 값을 이리저리 바꿔봐도 1" 이하로 값이 내려가지는 않았습니다. 이날의 하늘에서는 이 값이 한계인 것 같았지만 어떻게든 더 값을 낮추고 싶어 궁리를 하던 중 불현듯 떠오르는 격언이 있었습니다.
'가이드 그래프에 집착하지 마라.'
맞습니다. 가이드 그래프는 현재 상태를 보여줄 뿐 절대값이 아닌데 저도 모르게 숫자에 목숨을 걸고 있더군요. RMS는 추적환경과 시상의 영향을 더 크게 받는데, 이날 가이드 성(星)의 FWHM은 4~8까지 요동칠 정도로 시상이 그다지 좋지 못했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촬영된 결과를 꼼꼼히 확인했습니다. RMS가 높더라도 별만 동그랗게 나오면 되는 거니까요.
2020-02-06 00:45(KST) @ Yeoksam-dong, Seoul, South Korea
Takahashi FSQ-85EDP + QE 0.73x, Canon EOS 6D Mark II (modded), RainbowAstro RST-150H
Baader H-Alpha 3.5nm
Takahashi GT-40(240mm F/6.0), ZWO ASI290MM Mini, ASIAIR
6x3min @ ISO-1600, F/3.9, DSS 4.1.1, Photoshop CC 2020
별을 H-Alpha로 촬영해서 정말 볼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다행히 타원이 아니라 동그란 원으로 촬영되었습니다. 하지만 중심과 달리 주변은 타원으로 촬영이 됐는데요. 극축을 다시 잘 맞추고 테스트 촬영을 해봐야 극축에 의한 Field rotation인지 Back focus가 맞지 않는 것인지 알 수 있을 거 같습니다.
결국 완벽한 설정값을 찾지는 못했지만 지금까지 항상 고정된 설정값을 사용했던 것도 문제가 있었다는 것을 알게되었습니다. 초점을 맞추기 위해 테스트 샷을 찍는 것 처럼 가이드 결과를 확인하기 위한 테스트 샷도 충분히 찍어야 하겠습니다. 관측지에 도착하면 항상 시간에 쫒겨서 대충하던 부분을 좀 더 신경써야 좋은 결과가 나오겠네요.
정말 별 사진은 어렵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