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다녀온 후 후투티가 머리에서 아른아른 거린다. 올림픽공원에서 본 후투티도 기록됐으면 좋았을 텐데 아쉽다. 이런저런 잡생각에 월요일이지만 별생각 없이 자료를 정리하고 있는데 아내가 오늘은 올림픽공원 안 가냐고 물어본다.
음... 올림픽공원을 가야겠네...
사고의 흐름이 단순한 나는 항상 문간에 놓여있는 카메라 가방을 메고 그대로 올림픽공원으로 향했다.
구름이 가득했지만 한여름처럼 덥다. 이게 무슨 일이여... 처서(處暑) 지난 지가 언젠데 아직도 땀이 줄줄 흐른다...
이런 날씨면 새들도 그늘에서 쉬고 있을 거다. 그래도 나그네새라도 만날지 모르니까 평소와는 반대로 돌아보기로 했다.
곰말다리를 건너 팔각정 근처까지 갔을 때 여러 새소리가 들려왔다. 꿩소리도 들린 거 같고... 처음 듣는 새소리도 들리고 아무튼 이 부근에 새들이 있는 게 틀림없었다. 한참을 기웃거리다가 울창한 나무 사이로 꿩 발견!
꿩은 찾았고. 이제 다른 노랫소리의 주인공을 찾아야 할 차례. 쯔쯔쯔쯔께께께~ 하는 이상한 울음소리의 주인공이 너무 궁금했는데 나뭇잎 뒤에서 작은 움직임이 보였다. 이럴 땐 인내심과의 싸움. 새가 모습을 나타낼 때까지 기다리는 방법밖엔 없다.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르겠지만 15분은 넘은 듯... 그때 작은 새 한 마리가 우거진 수풀에서 호로록~ 날아올랐다가 나를 보더니 다시 나무 안으로 날아 들어갔다. 지금 놓치면 끝이다! 눈에 불을 켜고 뚫어져라 지켜보다 드디어 작은 갈색 새를 발견!
나뭇잎 사이의 아주 작은 틈으로 보이는 새. 당연히 오토포커스가 동작하지 않았다. 캐논 EOS R5 덕분에 이제는 수동초점도 빠르게 잡을 수 있게 됐다. 고오오오맙다 캐논... 수동으로 얼른 초점을 잡고 촤라라락~
금세 날아가 버렸지만 촬영이 제대로 됐는지도 알 수 없는 상황. 부랴부랴 결과를 확인해 보니 다행히 초점이 잘 맞은 사진이 몇 장 있었다. 눈이 크고 배가 노래서 흰눈썹황금새라고 생각했는데 때까치 종류였다. Merlin Bird ID 앱으로 검색을 해보니 칡때까치 유조라고 알려준다. 홍때까치라고 생각했는데 칡때까치였다.
성내천 너머에서 꾀꼬리 소리가 계속 들리는데 보이 지를 않는다. 가만히 기다리고 있는데 방심한 사이 날아가 버림... 아깝...
꾀꼬리를 허무하게 보내고 작은 새들을 찾고 있는데 누군가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다 나를 부른다.
'새 좀 봤어요?' 하는 물음에 순간 누구신가 했는데 야생화학습장에서 함께 흰머리오목눈이 기다리던 어르신이다. 여기까지 오면서 봤던 새를 말씀드렸더니 저쪽은 영 파이라고 하심. 3시면 귀가하는 분이셨는데 오늘도 정시에 퇴근이시다.
피크닉장에는 항상 까치가 바글바글하다. 요즘은 감나무에서 감이 떨어져서 그거 주워 먹느라 난리. 그 와중에 큰부리까마귀가 이곳까지 내려와서 까치랑 투닥거리고 있었다. 얘들도 영역 넓히는 중인가 보다.
날개 끝이 검은데 흰색 줄무늬가 있는 새들이 몽촌호부터 계속 내가 이동하는 경로대로 우르르 몰려다녔는데 안 봐도 밀화부리인 건 알 수 있었다. 주로 사이클경기장 주변에서 볼 수 있었는데 한곳에 있는 게 아니고 열매가 있는 나무를 따라 올림픽공원을 크게 도는 모양이다. 얘들 등에 위치 추적기 같은 거 달고 싶어짐...
천천히 큰길 따라 이동하면서 야생화학습장까지 이동했다.(중간에 사이다 뽑아 먹으며 놀다 옴.) 오늘은 지빠귀 종류가 안 보인다. 특히 대륙검은지빠귀는 여섯 마리가 모여있다가 한 마리씩 따로 발견됐었는데 이제 각자도생인가?
야생화학습장에는 항상 박새와 쇠박새가 살고 있는데 오늘도 부산을 떨며 먹이를 찾고 있었다.
가을이라 결혼을 많이 하나보다. 야생화학습장 오목눈이 나무 근처에서 웨딩 촬영이 한창이다. 커다란 레즈를 들고 있는 나는 조금 뻘쭘하다. 괜히 사진 찍는 사람들 틈에 서 있으면 오해받기 딱 좋은 모습. 그나저나 웨딩드레스 입고 이 더운 날씨에 사진 촬영하는 것도 힘들겠다.
요즘은 오후 4시가 넘으면 해가 많이 낮아져서 나무 밑은 많이 어둡다. 얼마 안 있으면 5시만 넘어도 어둑어둑해질 계절이라 이제는 좀 더 일찍 나와야 할까 보다. 아무튼 특별한 새도 만나고 오늘도 즐거운 탐조 겸 산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