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태식물(蘚苔植物, Bryophytes)이라고 하면 굉장히 낯설지만 <이끼>라고 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듯. 이끼는 그늘진 담장이나 볕이 들지 않는 숲 속의 나무에 붙어 있는 모습을 상상하게 되는데, 우리가 관심이 없어서 그렇지 공원만 가도 굉장히 다양한 이끼를 아주 쉽게 만날 수 있다. (전 세계 선태류 종류만 12,000종이 넘는다고 함.)
개인적으로 버섯이나 이끼에 관심이 많아서 보이는 족족 사진으로 남겨 놓고 동정을 하려고 했지만, 알려 주는 사람도 없고 자료도 거의 없어서 제대로 동정을 하는 건 거의 불가능이었다. 그래서 도감을 알아봤더니 우리나라에는 딱 한 종류만 있었는데, 국립생물자원관에서 쓴 '선태식물 관찰도감'이 국내에서 유일한 선태류 도감이었다.
아무 쓸데없는 자기 계발서는 종류가 너무 많아서 세기도 힘들던데, 자연과학 관련 도서는 찾을 수 없는 대한민국...
일단 낼름 구입해서는 이제 이끼 동정은 끝이라고 생각했는데...
음... 읽으면 읽을수록 점점 더 미궁 속으로...
새(鳥)와 다르게 생긴 건 형태학적으로 분류가 몇 분류 안 되는 거 같고, 눈에 보이는 모양으로 동정하는 건 사실 거의 불가능하다는 걸 알게 됐다. 제대로 동정하려면 이끼를 수집해서 잎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봐야 알 수 있다는...
망했다... 돋보기면 어떻게 될 줄 알았는데 어림도 없다니... 현미경을 사야 하나... 오히려 고민이 더 늘었다.
'선태식물 관찰도감'은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는 이끼 중에서 자생 이끼 302종을 수록했다고 하는데, 문제는 원하는 이끼를 도감에서 찾기가 힘들다는 거다. 이끼 이름도 모르는데 색인은 무용지물이고 사진으로 비교도 일일이 302종을 다 들여다봐야 하니 보통일이 아니었다.
이끼과(科) 별로 분류해서 수록되어 있지만 이런 식의 분류는 초보에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차라리 발견 위치(돌담, 나무줄기 등)로 분류를 하고 찾아볼 수 있게 했다면 좀 더 쉬웠을 텐데... 일일이 모양으로 사진과 대조해 보며 찾고 생육지를 확인해야 하니 뭔가 거꾸로 된 기분이다.
예를 들어 나무줄기에서 자라는 이끼를 관찰했다면 생육지가 나무줄기인 이끼만 찾아서 비교할 수 있도록 분류나 색인이 되어 있다면 편리하잖아...
거기다 종이가 두꺼워서 생기는 문제라고 생각하지만 사자마자 책이 갈라져 버림. 손으로 누른 것도 아니고 조심스레 펴기만 했는데 쩍 하고 갈라짐.
우리나라 책들 제본 상태가 거의 이모양이었던 거 같다. 일본이나 미국에서 산 책들은 이런 경우가 없었던 거 같은데... 제본도 제대로 못하나... 곧 갈라져서 떨어져 버릴 듯...
그래도 내용은 꽤 알차다. 잎의 현미경 사진도 있어서 이끼를 수집해서 잎을 비교하면 훨씬 정확한 동정이 가능할 거 같다. 지금까지는 이끼의 확대 사진만 촬영했는데 이끼 샘플도 열심히 수집해야겠다. 뭔가 일이 자꾸 늘어남...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