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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찰기록/천체 촬영기

[2020년 1월 4일] 2020년 새해 첫 촬영기

by 두루별 2020. 1. 7.

2020년 새해가 밝고 맞는 첫 주말. 날씨가 맑다는 예보였지만 문제는 전날 내린 눈이었습니다. 

해발 1010m에 위치한 조경철 천문대의 진입로는 비포장 도로가 섞여 있는 데다, 경사가 심해서 눈이 조금만 와도 진입을 할 수가 없습니다. (날이 맑아도 올라갈 수 없는...) 그래서 홈페이지를 통해 도로 상황을 안내해주고 있습니다.

 

이날 낮까지만 해도 도로 상황은 '진입금지'로 나와 있어서 다른 관측지로 가야 하나 고민을 하고 있었는데, 오후 늦게 다시 확인해 보니 다행히 '진입 가능'으로 변경이 되었더군요. (유후~!) 부랴부랴 짐을 챙겨서 초저녁에 조경철 천문대로 출발을 했습니다.

 

가는 길이야 항상 비슷하니까 특별할 것은 없습니다만, 이날은 금요일인데도 차가 많지 않아 예상보다 조금 더 일찍 천문대에 도착했습니다. 천문대는 한창 일반인 관측 시간일 텐데 생각보다 조용합니다. 간간히 돌아가는 차들만 있을 뿐 방문자가 많지 않아 보였습니다.

 

월령 8일의 달이 떠 있었고 기온은 영하 9도 정도로 쌀쌀했지만 순간 초속 4m 이상으로 부는 바람이 달 보다 더 걱정이었습니다. 이날은 촬영보다 ASIAIR를 이용한 가이드 테스트가 목적이었는데 바람이 강하면 가이드가 잘 될 수가 없겠죠. 자칫 바람 때문에 제대로 된 테스트를 할 수 없을까 걱정이 됐지만 부지런히 장비를 설치했습니다.

 

추운 날씨에 손이 곱아 호호 불면서 간신히 장비를 설치하고 마운트에 배터리를 연결하려는데...

 

음?!?!?? 마운트용 배터리가 담겨있어야 할 자리가 텅 비어있습니다!!!!! 

 

식은땀이 나면서 순간 얼음이 되었습니다. 머릿속이 하얘지고... '이대로 촬영이 끝인 건가... 여긴 왜 온 것인가...' 온갖 생각이 순간적으로 휘리릭 지나갔습니다.

 

허둥지둥 장비를 챙기다 빼놓고 온 모양입니다. 네. 순간 당황했습니다. 하지만 괜찮습니다. 이럴 때를 대비해서 비상용으로 12V 5AH 무보수 배터리를 가지고 다니니까요. 트렁크를 뒤져서 12V 배터리를 찾아 연결했습니다. 음... 마운트가 작동하다 불이 이상하게 깜빡입니다. 확인해 보니 배터리가 늙어서 그런가... 전압이 너무 낮습니다... 또 망했습니다...

 

이대로 접어야 하나 망설이던 순간! 최근에 중국 Aliexpress에서 구매한 PD 전원 케이블(https://sbrngm.tistory.com/337)이 생각났습니다. 현장에서는 사용해 본 적이 없어서 불안했지만 마지막 희망이라 따질 여력이 없었습니다... 

 

PD 전원 케이블의 길이가 짧아서 5V 외장 배터리를 하프 피어에 고무줄로 묶고 나서야 전원을 연결할 수 있었습니다. 어렵게 연결하고 전원을 넣으니 다행히 아주 잘 동작했습니다. 와우~! 다행히 촬영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문제 하나 해결하고 떨리는 손으로 PoleMaster를 연결합니다. 이 녀석이 요즘 말을 잘 안 듣습니다. 화면 갱신이 엄청 느려지거나 아예 갱신이 안되거나 해서 극축 설정을 하는데 애를 먹입니다. 오늘은 제발 잘 되기를...

 

역시 안됩니다 ㅠㅠ 극축 설정을 위해 PoleMaster를 노트북에 연결하고 화면을 보니 또 화면 갱신이 되지 않습니다. 아오 정말...

 

기온이 영하 9℃로 추워서 노트북이 제대로 동작을 안 하는 거 같습니다. 가벼워서 휴대성이 좋을 거 같아 구매한 LG Gram이 계속 속을 썩입니다. 아직 노트북이라고 확신을 할 수는 없지만 상당히 의심이 갑니다. 다음엔 다른 노트북으로 테스트를 해봐야겠습니다. 이렇게 1시간을 끙끙거려 간신히 극축 설정을 마치고 한 숨 돌리려는데...

 

'저기요...' 갑자기 여성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순간 흠칫... '누구지? 여자가 한 밤중에 이 산꼭대기에 왜??' 

돌아보니 방한장비로 꽁꽁 싸맨 사람 하나가 서 있었습니다. 저랑 비슷한 시간에 도착해서 16인치 정도 돼 보이는 돕소니안 망원경을 강아지 집 앞에 설치하던 분인가 본데 여성분이셨군요. 저에게 언제까지 있을 건지 물으시더군요. 왜 그러시냐고 묻자 사람도 없는데 개는 짖고 무서워서 그런다고 가기 전에 꼭 얘기해 달라고...(제가 더 무서웠습니다...)

 

촬영 전에 ASIAIR의 가이드 Calibration에서 설정문제로 오류가 좀 있었지만 ASIAIR는 사용하기 편리했습니다. 그것도 차 안에서 설정하고 확인할 수 있으니 정말 좋더군요.

 

참고로 PHD2 Calibration에서 'RA Calibration Failed Star Did Not Move Enough' 오류가 난다면 Calibration Step 값을 충분히 높여주면 대부분 해결할 수 있습니다. 저처럼 초점거리가 짧은 가이드 망원경을 사용하는 경우에 주로 발생합니다. 만약 초점 거리가 긴 가이드 망원경이라면 반대로 Step 값을 줄여주면 됩니다.

 

테스트 촬영을 해보니 FSQ-106은 FSQ-85보다 화각이 좁아서 장미성운과 크리스마스트리 성운을 한 화면에 넣기는 불가능했습니다. 아쉽지만 장미성운을 촬영하기로...

 

ASIAIR의 스케줄 기능을 사용하니 촬영된 결과도 확인하면서 촬영 과정을 모두 원격으로 볼 수 있으니 정말 편하네요. 바람이 초속 4m로 순간순간 불어오는 환경이라 가이드에 큰 기대를 하지 않았지만 꽤 괜찮은 가이드 그래프를 보여줍니다. M-Gen보다 PHD2가 가이드를 잘하는 걸까요? 아직 결론을 내리기는 이르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보는 원에 가까운 별상입니다. 

 

촬영을 시작하고 차 안에서 좀 쉬다가 강아지들 간식도 줄 겸 천문대를 돌아봤습니다. 천문대가 조용하니 방문객이 없나 봅니다. 무섭다던 그 여성분은 새벽 1시가 넘자 돌아갔고요. 주차장을 다 돌아봤지만 천문대에는 저 혼자였습니다. 

이럴 때 강아지들 사진을 찍어야겠다 싶더군요.

 

강아지 집으로 다가가자 저를 알아보는지 꼬리를 치며 반기는 녀석들... 

 

여기 보세요~ 찰칵~~ 번쩍~!

요 녀석들 드디어 얼굴 공개!! 천문대에 관측하거나 촬영하는 사람이 없으니 마음껏 플래시를 터트렸습니다. 지난달 까지만 해도 강아지였는데 금방 컸네요. 사진 찍느라 고생했으니 일부러 준비해 간 강아지 간식을 듬뿍 줬습니다. 사진의 오른쪽에 있는 녀석이 저 울타리의 문을 뛰어넘어 자주 탈출을 하는데 이번에 보니 막아버렸네요. 너 어쩌냐 이제 밖에 못 나오겠다.

 

강아지들 집에서 천문대로 올라가는 길에 올려다보니 오리온이 지평선으로 내려가기 시작합니다. 이제 한겨울이 물러가고 곧 봄이 온다는 증거겠죠. 이 언덕길을 올라가면 천문대 정문 주차장이 나옵니다. 많은 분들이 이 곳에서 관측을 하거나 촬영을 하죠. 하지만 이날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초저녁에 달이 있어서 그랬을까요? 다들 오늘은 쉬시는 듯...

 

둘러보는 김에 가까이 가 본 적이 없던 레이더 기지에도 가봤습니다. 

 

365일 항상 근무를 하시는 듯한 광덕산 기상 레이더 기지. 저는 부러운 곳에서 근무하시지만 실제로 근무하시는 분들은 굉장히 노고가 많겠습니다. 그나저나 레이더 돔이 축구공 같네요...

 

레이더 기지에서 내려다본 조경철 천문대. 이런 건물을 산꼭대기에 건설하는 것도 정말 큰일이었겠습니다. 그분들의 노고 덕에 저는 편하게 방문해서 촬영을 할 수 있는 거죠. 이 천문대의 건설을 위해 노력하신 조경철 박사님께도 감사를...

 

촬영을 마치고 짐을 챙기고 있는데 뭔가 허연 것이 보입니다. 깜짝이야... 오늘 참 많이 놀라네요...

 

어떻게 탈출을 한 건지 간식 달라고 직접 찾아왔네요. 탈출 못한 녀석은 목놓아 울어댑니다. '걔만 주면 안 돼애애~'

남은 간식과 소시지까지 탈탈 털어서 두 녀석에게 먹여줬습니다. 추운 날씨에 밖에서 자느라 고생이 많다...

 

ASIAIR의 테스트는 다행히 잘 마쳤습니다. 모든 기능을 사용해 본 것은 아니지만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는 것도 확인했고 결과도 만족스럽습니다. 오토 가이더와 촬영 스케줄 기능만으로도 충분히 사용 가치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벌써 1월 말이 되어가지만 날씨가 허락하지 않아 별이 많은 그곳에 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설 연휴의 날씨가 궁금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