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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체사진/Deep-sky

[2020년 11월 21일] 실패한 촬영과 단위 노출 실험

by 두루별 2020. 11. 24.

금요일 출사는 촬영 시간이 항상 촉박합니다. 이날도 촬영지에 밤 11시가 넘어서 도착하는 바람에 부지런히 준비하고 촬영을 시작했지만 첫 사진을 얻은 시간은 새벽 1시가 넘어서였습니다. 2시간은 어디로 간 건지...

한 일이라고는 장비 설치하고 초점 맞추고 구도 설정한 게 전부... 하지만 이상하게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이날 촬영은 오리온 벨트의 세 별과 말머리성운을 함께 담을 생각이었습니다. 
밝은 별들과 어두운 대상의 조합이라 별이 타버릴 거 같았지만 노출을 여러 단계로 주기에는 촬영 시간이 너무 부족해서 일단 지르고 보자는 생각으로 촬영을 시작!

평소와 달리 이번 촬영에서는 별자리곰님께서 계산하신 단위 노출(Sub-Exposure)을 이용할 예정이었습니다. 단위 노출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별자리곰님의 블로그 내용을 확인해 보세요.

 

서브 프레임의 적정 촬영시간 (Sub-Exposure Calculator)

적정 노출시간을 찾는 것은 상당히 중요한 일입니다 지금까지 여러가지 방식을 찾아봤는데 아직도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는 부분이구요.  외국 포럼도 열심히 뒤져봤고 이것저것 자료도 찾

www.nulliusinverba.blog

평소대로 노출을 준다면 2~3분 정도를 줘야겠지만, 이날 단위 노출은 L 채널(1x1 bin) 30초, RGB 채널(2x2 bin) 30초를 줄 예정이었습니다. 노출이 너무 짧아 대상이 보이기나 할까 걱정됐지만, 그 이상의 노출은 SNR을 올리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계산을 통해 알게 되었고, 철원의 밤하늘 기준으로 배경이 포화되기 전까지의 적정 노출은 제가 사용하는 장비 기준으로 겨우 32초 밖에 안된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헥헥...

하지만 한 달에 한 번 올까 말까 한 월령 좋고 맑은 날에 이런 터무니없이 짧은 노출로 촬영 테스트를 하기에는 많은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망치면 한 달을 기다려야 하니까요. 그래서 이날도 한참을 고민하다가 계산으로 얻은 짧은 단위 노출로 촬영을 시작했습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참 많은 고민과 걱정을 한 거 같은데, 실상은 '잘 되겠지 뭐'라고 제 멋대로 생각하고는 차에 들어가 알람 맞춰놓고 쿨쿨 자버렸습니다. 그렇게 몇 시간을 자다 알람 소리에 잠을 깨서 나가보니 오리온자리는 벌써 서쪽으로 기울고 있었고 봄을 알리는 사자자리가 벌써 높이 올라오고 있더군요.

'세월 참 빠르네. 벌써 봄인가아?' 라는 어울리지도 않는 감성에 젖은체 덜깬 잠을 쫒던 중 문득 적도의를 보니 추적을 멈춘 상태가 아니겠습니까아?? (뜨아아아....)

촬영 옵션에서 자오선 플립(Meridian flip)을 켜 놨어야 했는데 깜빡... 쿨쿨 잠들고 난 후 얼마 안지나 자오선에 걸려 추적도 멈추고 촬영도 망하고, 그 와중에 기온이 급격히 떨어지면서 초점도 몇 장 빼고는 모두 나가버린 상태... 이미 망해버린 L 채널은 버리고 급하게 RGB 채널의 촬영을 시작했지만 40분도 못 찍고 나무에 걸려버려 허망하게 촬영 종료. 살아갈 의욕도 없어져서 플랫도 안 찍고 그냥 장비 접고 철수했습니다. ㅜㅜ

며칠을 쳐다도 안 보다가 어차피 망한 거 단위 노출 결과나 확인해보려고 몇 장 안 되는 RGB 채널을 합성했습니다. 

특별한 처리 없이 합성 후에 AutoBackgroundExtraction로 배경 정리하고 히스토그램으로 콘트라스트만 조절을 했습니다. 이상태로는 이미지의 질이야 당연히 엉망이죠. 하지만 RGB 채널당 각각 30초(2x2 bin) 노출로 촬영한 이미지 14장을 합성한 결과물로 채널당 7분(총 21분) 노출인데도 굉장히 많은 것을 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요즘 CMOS의 성능은 정말 대단하네요...)

만약 14장이 아니라 120장을 합성했다면 결과가 어땠을까요? 훨씬 부드럽고 세부가 드러나는 그런 결과가 나왔을 거 같습니다. 지난번 오리온성운에서의 경험으로 어느 정도 예상했던 내용이었고요. 그렇다면 무리한 노출보다는 하늘의 밝기에 따른 적절한 노출이 답인 걸 까요?

아직 확실한 결론을 내릴 수는 없지만 지금 드는 생각은 '그럴 거 같다'입니다.

2018년에 촬영한 말머리성운은 Canon 6D Mark2 DSLR을 이용해서 촬영을 했었는데 단위 노출이 무려 4분과 8분이었습니다. 놀라운 것은 그때 이미지와 비교해도 담고 있는 내용이 비슷하다는 것입니다. 노출 차이가 8배가 넘는데도 말이죠. 사용한 카메라의 성능 차이가 크다고 해도 적절한 단위 노출에 의한 촬영이 충분히 효과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

항상 촬영 시간이 부족해서 칼라 냉각 카메라 구매를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었지만, 이번 촬영 결과를 보면서 당분간은 지금 사용하는 모노(Mono) 냉각 카메라를 계속 사용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칼라로 4시간 촬영한 결과나 모노로 2시간 촬영한 결과가 크게 다르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들었거든요. 오히려 모노 쪽이 처리하기도 쉽고 세부를 살리기 더 쉬울 거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망쳐버린 촬영이었지만 그나마 단위 노출에 대한 실험은 어느 정도 성과가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좀 덜 아픕니다.
이제 제대로 촬영을 해서 결과를 통해 증명하는 방법이 남았습니다. 초점도 좀 제대로 조절하고 촬영 내내 모니터링을 잘해서 다음번 촬영에서는 제대로 된 결과를 얻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