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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장비

[2023년 5월 22일] 스와로브스키 ATX 85mm 필드스코프

by 두루별 2023. 5. 24.

스와로브스키 ATX 85mm와 SuperMount Mini. 삼각대는 레오포토 LS-324C.

탐조를 하는데 꼭 필요한 장비를 하나만 고르라고 하면 당연히 쌍안경이다. 
새는 맨눈으로도 볼 수 있지만 조금만 멀어져도 종을 구분하기 어렵기 때문에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새를 관찰하려면 적당한 배율의 쌍안경은 있어야 한다. 

그리고 주목적이 촬영이냐 관찰이냐에 따라 카메라와 망원렌즈 트리를 탈 것인지 아니면 필드스코프 트리를 탈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고 들었는데, 나는 촬영이 목적인데도 필드스코프가 필요했다. 숲에서 새를 볼 때는 쌍안경이면 충분했지만 갯벌에서 멀리 떨어진 새를 볼 때는 쌍안경으로는 부족했고 600mm 망원렌즈로는 어림도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필드스코프(Spotting Scope라고도 함)는 일단 망원경이기 때문에 무겁고 부피가 나간다. 탐조를 혼자 나간다고 가정해 보면 쌍안경을 목에 걸고 카메라를 들고 다니면 되지만 필드스코프까지 들고 다니기는 힘들다. 결국 촬영을 위해서는 필수는 아니라는 것. 하지만 관찰이 목적이라면 카메라 대신 필드스코프를 들고 다니면 되니까 결국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된다. 

그래서 고민 끝에 촬영이 목적인 나는 필드스코프는 포기하고 카메라와 망원렌즈에 투자를 했는데, 갯벌 탐조를 나가고부터 이 필드스코프의 필요성을 뼈저리게 느끼게 됐다. 갯벌에서는 물이 빠지면 새들이 물을 따라 이동을 하는데 몇 백 미터까지 나가기도 한다. 이때는 필드스코프가 아니면 그냥 새가 있다는 것만 확인이 될 뿐 종을 파악하는 건 불가능하다. 

멀리 해안선 근처의 새들 (조그만 물체가 모두 새)

결국 필드스코프를 구입하기로 결정하고 알아보기 시작했는데, 필드스코프도 고급기와 중급기 그리고 입문기로 나뉘어 있었다. 입문기는 50만 원 미만의 가격이고 중급기는 200만 원 미만인 거 같았다. 고급기는 대충 300만 원 이상이었다.

다양한 가격대의 필드스코프가 있었지만 지금까지 별 보는 취미를 통해 배운 건 장비는 한 번에 끝판왕으로 가야 한다는 것. 그래야 중복 투자가 없다는 건 아마 모든 취미가 같을 거다. 그래서 과감하게 초보 주제에 입문기와 중급기를 건너뛰고 고급기로 알아보기 시작했다. 

국내의 경우 고급기는 스와로브스키와 코와의 2파전인 듯했는데, 짜이스나 라이카도 있었지만 인기가 없는 거 같았다. 예전의 경험상 짜이스나 라이카는 크게 이름값을 못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스와로브스키와 코와의 제품 중에서 고르기로 했다. 하지만 이 고민이 정말 결정하기 어려웠다...

구경은 65mm나 85mm급 중에서 결정하면 됐는데 밝은 주간엔 큰 차이가 없지만 흐린 날이나 역광에서는 구경에 따른 차이가 발생하는 모양이다. 가격도 큰 차이가 나지 않아서 구경은 85mm로 결정했다. 그 이상의 구경은 무게 때문에 포기. 85mm도 무게가 좀 걱정되긴 했지만 망원렌즈의 무게에 비하면 무게도 아니었다.

이제 코와냐 스와로브스키냐의 결정인데. 네임밸류는 스와로브스키가 앞서는 거 같은데 성능은 큰 차이가 안 난다고 하는 걸 보면 아마 유럽 회사의 어드밴티지일 가능성이 컸다. 그럼 성능이 비슷하다면 가격을 비교하면 됐는데 가격 차이가 애매하다. 스와로브스키 'ATX 85mm'와 코와 'TSN884 프로미나S'의 가격 차이가 30만 원. 무게와 크기도 비슷하고 성능도 비슷한데 가격은 코와가 30만 원 저렴하다. 코와의 TSN884가 플루오라이트 렌즈를 사용해서 색수차는 더 제어가 잘 될 거라는 예상은 할 수 있지만 기본 성능 차이가 크지 않다고 하는 걸 보면 가격도 같다고 보는 게 맞다. 

좌: ATX 85mm 우: TSN884 (이미지 출처: 스와로브스키옵틱, 코와옵틱스)

차라리 가격 차이가 좀 났으면 결정이 쉬웠을 텐데 가격도 비슷해서 결정을 못하고 고민만 하고 있었는데, 스와로브스키의 모듈식 설계가 최종 결정을 하게 만들었다. 이게 무슨 얘기냐면 코와는 100만 원 정도의 접안렌즈만 교환하는 방식으로 경통 자체는 교환을 하지 못한다. 결국 다른 구경의 제품을 사용하려면 새로 구입을 해야 하는 것. 하지만 스와로브스키는 스코프 모듈과 아이피스 모듈로 분리되어 있어 아이피스 모듈은 한 번 구입하면 모든 구경의 스코프 모듈에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작은 구경의 제품을 사용하고 싶으면 작은 구경의 스코프 모듈만 구입하면 사용이 가능하다. 그리고 스코프 모듈은 생각보다 가격이 저렴했다.

이게 왜 중요하냐면 주로 필드스코프는 조수(아내)가 들고 다닐 건데, 무게 때문에 이동이 어려워지면 아주 낭패다. 하지만 이럴 때 작은 스코프 모듈을 구입해서 교체하면 되니까 코와를 구매하는 것보다 금전적으로도 이득이 되는 것이다. 무게 문제가 해결이 되니까 더 이상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디자인도 개인적으로는 스와로브스키가 훨씬 마음에 들었으니까. 

85mm 스코프 모듈(25-60배)과 ATX 아이피스 모듈

주문하면 이렇게 두 개의 모듈로 나뉘어 도착한다. 이 모듈을 카메라에 렌즈를 장착하듯 조립하면 끝.
그럼 아래처럼 제대로 된 필드스코프의 모습이 된다.

길이가 길지 않지만 혹시 가방이 모자라면 분리해서 운반하고 현장에서 조립해서 사용해도 된다. 모듈 형의 장점.
마감이나 재질, 조작감 등등 모두 훌륭하다. 성능만 소문대로라면 간만에 아주 흥분되는 망원경이 생긴 셈이다.

필드스코프가 도착한 다음날 나 홀로 탐조를 나섰다. 촬영보다는 필드스코프 테스트가 주목적.
장비의 구성은 레오포토 LS-324C 삼각대에 슈퍼마운트 미니 프리스탑 경위대를 올리고 필드스코프를 장착했다.

비디오 헤드나 짐벌 헤드에 올릴까도 고민을 했는데 부피도, 크기도 작은 슈퍼마운트 미니는 최고의 선택이었다. 움직임이 정말 부드럽고 텐션 조절만으로 균형을 유지하기 때문에 멀리 있는 새의 관찰이 편하고 즐겁다. 필드스코프는 처음 사용해 보는 것이지만 망원경은 많이 다뤄봤기 때문에 사용에 문제는 없었다. 

처음으로 몇 백 미터 떨어진 대상을 확인해 보니... 세상에... 그동안 이렇게 선명한 상(像)은 경험해보지 못했다. 완전히 신세계다. 정말 쨍~ 하다는 표현이 이럴 때 쓰라고 있는 표현이었다. 중앙부터 주변부까지 정말 선명했다. 해상력이 좋다고 해야 하나? 면도날처럼 날카로운 상은 몇 백 미터 밖의 대상도 아주 선명하게 보인다. 이 정도면 갯벌이나 습지의 새를 관찰하는데 부족함이 없을 거 같다. 진작 사야 했었다... 

무게를 고민하면서도 85mm를 구입한 이유가 있다. 바로 별을 보기 위해서였는데, 인간의 눈에 최적화된 필드스코프라 별의 촬영에는 적합하지 않겠지만 안시로 별을 보는 데는 이만한 망원경이 없을 거 같았다. 밤에 별을 겨눠보니 예상대로 별은 시야 구석구석까지 예리하게 보였고 달을 봤을 땐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안시 관측의 흥분이 몰려왔다. 별도 달도 정말 선명하고 예리하게 보여준다.

형편없는 손포컬이지만 안시로 보는 달은 예술이다

색감도 좋고 선명함도 달을 보는 내내 감탄하게 만들었다. 이렇게 별과 달을 보면서 감탄했던 게 도대체 언제였더라? 아주 오래전 처음 망원경을 구입하고 달을 봤을 때의 감동이 떠오를 만큼 달을 보면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지상도 별도 이렇게 선명하게 보여주는 망원경을 만날 거라곤 상상도 못 했었다.

이 필드스코프 하나면 낮엔 지상 관측, 밤엔 별 관측 모두에 사용할 수 있겠다. 물론 별의 안시 관측 용도로는 구경이 너무 작고 쓸데없이 너무 비싸지만 낮에도 밤에도 이렇게 날카로운 상을 볼 수 있다면 충분히 투자할 가치가 있다. 그동안 망원경 좀 다뤄봤다고 필드스코프에 대해 아는 척 좀 했는데 겸손해져야겠다. 나는 필드스코프의 문외한이었다.

이제 남은 것은 잘 활용하는 것. 이 필드스코프의 성능은 충분히 확인했으니 그 장점을 살려서 망원렌즈로는 불가능한 거리의 대상을 촬영하기 위한 디지스코핑도 준비를 해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