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밤에도 맑은 날이라 신나서 별 촬영 장비를 챙겨 포천으로 출발했다. 사실 날씨는 어제가 더 좋았는데 할 일도 없는 놈이 평일에 멀리 가는 건 왜 그리 부담스러운지... 그리고 주말에 떠나야 뭔가 여행하는 기분도 나고 그렇다. 그렇다 핑계다.
포천에 들어서자마자 일단 배를 좀 채우고... 일부러 이 집 순댓국 먹으려고 점심도 거름.
이제 가을이라고 벌써 해가 짧아지고 있다. 6시가 넘으면 어두워서 조류 촬영은 끝이다. 게다가 포천은 산이 많아서 더 빨리 어두워짐. 새를 볼 수 있는 시간이 의외로 짧아서 서둘러야 한다.
오랜만에 들렀더니 풀이 많이 자랐다. 요즘은 관리를 안 하시는 모양. 산책로가 어딘지 찾기가 힘든 지경이었다. 폭우에 산책로 일부는 쓸려 나가서 걷기도 힘들었다. 그래도 항상 이곳에 오면 자연이 좋아서 기분이 좋아진다.
일단 탐조대에 원앙이 돌아왔나 보려고 조심조심 걸어가고 있는데 어디선가 새소리가 들린다. 박새도 아니고...
딱새를 오랜만에 만났다. 올림픽공원에도 몇 마리 있었는데 요즘은 통 안 보이던데 이곳엔 봄에 열심히 번식도 하는 거 같더니 가족인지 함께 모여서 날아다니고 있었다.
탐조대 안쪽을 조심스레 들여다보니 텅 비었다... 항상 있던 왜가리도 안 보이고... 원앙은 다른 데로 갔나 보다.
새들의 빈자리를 메뚜기가 채운 느낌. 발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메뚜기가 날아오른다. 한두 마리가 아니다 엄청난 떼다.
눈이 침침해서 바닥에 붙어 있거나 풀에 붙어 있으면 난 보이지도 않는다. 풀밭 전체에 바글바글했다. 아내를 데려 왔으면 거의 기절했을 텐데 아쉽다... 가을 가기 전에 꼭 데려와야지...
공원을 한 바퀴 돌아봤는데 새가 없다. 참새하고 물까치 빼고... 얘들은 어디나 있으니까... 날은 또 어찌나 뜨거운지 잠깐 돌아봤는데도 땀이 줄줄 흐른다. 이럴 땐 시원한 콜라 한잔...
새가 없어도 다양한 꽃과 벌레들이 있어서 좋다. 메뚜기 쫓아다니다 보니 벌써 시간이 후딱 지나갔다. 그러다 생태연못 근처의 풀밭에서 멧새 비슷한 녀석을 발견! 쌍안경으로 확인해 보니 노랑턱멧새였다!! 이때 또 우리의 캐논 EOS R5의 AF가 헛짓을 하는 바람에 촬영 실패... 얘는 꼭 결정적일 때 이러더라...
이제 곧 해가 산 뒤로 넘어갈 시간. 5시면 해가 지는 동네라니... 강원도 두메산골도 아니고...
아쉬움에 공원을 한 바퀴 더 돌고 있는데 풀밭에서 사냥을 하던 딱새가 나를 보더니 포로록 나무로 날아오른다.
주차장으로 돌아오는 길에 탐조대에 마지막으로 들렀는데 노랑턱멧새랑 딱새가 싸우고 있었다. 딱새보다 멧새가 센가? 둘 다 무리를 이루고 있는데도 노랑턱멧새가 딱새를 밀어냈다.
역시 아내의 말이 맞았다. 새가 안 보인다고 실망할 필요 없다. 새는 항상 마지막에 많이 보인다고 나를 위로하던 아내. 아내 말대로 새를 못 봤다고 슬퍼할 필요가 없었다. 주차장으로 가면서 노랑턱멧새도, 딱새도 실컷 볼 수 있었다.
이제는 관측지로 이동해야 한다. 가면서 저녁도 먹어야 하고 쓸데없이 바쁘다. 이제 이곳은 늦가을이나 겨울에 다시 들러야겠다. 그땐 어떤 녀석들이 와 있을지 기대된다. 원앙도 돌아왔으면 좋겠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