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유부도에서 도요물떼새를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마지막 물때인 10월 셋째 주.
이번 물때를 놓치면 올해 유부도 탐조는 사실상 끝났다고 봐야 한다.
날씨도 딱 오늘 만 맑고 주말은 흐리고 비가 오거나 강풍예보. (날짜 진짜 잘 잡음)
평일이라 유부도를 찾는 사람이 많지 않을 거 같아 물때 시간에 맞춰 여유 있게 군산으로 출발했다.
여유 있게 군산항에 도착. '유부도 배 타는 곳'이라는 표지판을 따라가면 유부도 선착장이 나온다.
선착장에 가 보니까 아직 물이 차려면 멀었다. 물이 가득 차야 배가 들어올 수 있음.
딱히 할 일이 없어서 차에서 잠시 꿀잠 자고 다시 나와보니...
물은 벌써 배가 들어올 수 있을 만큼 차오른 상태.
약속한 시간에 맞춰 배가 오고 있었다.
지난번 방문 때, 배에 구명조끼도 없다고 경악을 하던 아내가 떠올랐다. 그런데 배 뒤에 구명조끼가 똭!!
선장님 과속하더니만 금방 유부도에 도착.
배도 안 섰는데 아주머니들은 벌써 다 기어 올라갔다. 나 혼자 낑낑 대며 배에서 내림...
평일이지만 많은 사진가들이 유부도를 찾았는데,
나도 이분들 틈에 은근슬쩍 껴서 함께 도요새를 관찰했다. 이제 물이 차오르기만 기다리면 됨...
(근데 처음 보는 놈이 옆에 있으니까 할아버지들 의심의 눈초리로 냅다 김밥을 먹임... 꿀맛...)
세상 어디에서 이런 장관을 볼 수 있을까...
매향리 갯벌이나 아산 걸매리 갯벌도 도요가 많이 찾지만 유부도가 압도적으로 많다.
물이 차오르자 도요새들이 날아오르기 시작했는데,
저 멀리 있던 검은머리물떼새와 마도요 무리는 물이 차자 모두 섬 반대편으로 날아가 버렸다.
오늘의 목표종은 큰왕눈물떼새!
과연 오늘 볼 수 있을지... 두근두근...
왕눈물떼새들이 무리 지어 다니고 있었지만,
내가 찾는 큰왕눈물떼새는 없었다. 시기가 안 맞는 걸까...
열심히 필드스코프로 큰왕눈물떼새를 찾고 있는데,
옆에 있던 어르신 한 분이 넓적부리도요(이하 넓부도)를 찾았냐고 넌지시 물어보신다.
음... 오늘은 목표종이 아니라 다른 거 찾고 있다고 했더니 실망의 눈빛이...
너무 실망하시는 거 같아 찾는 척이라도 하려는데...
운 좋게 금방 넓부도를 발견!
주변에 위치를 알려드렸더니 난리가 났다.
어디 어디?? 왜 난 안 보여... 찾았다! 어디라고??? 등등 아수라장...
넓부도 하나 찾아 드리고 계속 큰왕눈이 탐색 중...
열심히 큰왕눈이를 찾다가 다리에 가락지를 한 다른 넓부도 발견!!
진짜 안 찾으니까 더 잘 보임... 얼른 촬영하려고 고개를 든 순간...
뭐에 놀랐는지 일제히 날아오른다. 이럼 리셋...
그런데 이런 일은 아주 비일비재함. 수시로 날아올랐다 내려앉았다를 반복.
거기다 유부도는 수많은 도요들이 좁은 공간에 모이기 때문에 한눈에 관찰하기는 좋지만,
반대로 특정 개체를 찾는 건 지옥이다. 잠시도 가만있지를 않아서 더 어려움.
제일 앞줄에 넓부도 있다고 얘기하자 또 난리가 남.
이분들은 다른 도요들은 관심 없고 오직 넓부도만 노리고 오신 모양이었다.
눈으로 본 녀석들 까지 포함하면 총 6 마리의 넓부도를 찾았는데,
겹치는 녀석이 있다고 가정해도 깃털의 모양이 달라서 4 마리는 확실해 보임.
나도 처음 왔을 때 엄청난 도요 무리에 압도되어 제대로 찾지 못했던 경험이 있는데, 오늘 만난 이분들도 처음 오신 분들이 많은 모양이었다. 심지어 평소 둥지 촬영하듯이 유부도에 오면 넓부도가 딱 하고 기다릴 거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계셨음... 몇 마리 찾아 드려서 어찌나 다행인지...
어쨌든 큰왕눈물떼새는 찾지도 못하고 넓부도만 열심히 찾고 말았다...
중간에 누가 드론을 날리는 바람에 새들이 모두 날아가 버려서 탐조는 조기 종료...
기다리면 다시 올 거 같기는 했지만 4시가 넘자 벌써 해도 기울기 시작해서 이쯤에서 마무리하기로 했다.
이번 유부도 탐조에서는 많은 종을 볼 수는 없었다.
지난 추석에 비해 도요의 종류가 많이 적었는데, 좀도요, 흰물떼새, 민물도요가 거의 대부분이었고, 개꿩, 송곳부리도요, 세가락도요, 왕눈물떼새가 적은 수로 섞여 있을 뿐이었다. 다양한 도요는 내년 봄을 기약해야 할 거 같다.
이날 넓적부리도요를 제외하고 가장 기억에 남는 녀석은 바로 이 녀석.
검은색과 노란색의 유색 가락지(Color flag)를 달고 있는 녀석이 있어서 집에 와서 확인해 보니,
검은색과 노란색은 말레이시아가 사용하는 가락지 색깔이었다.
국가별 가락지 색은 아래 사이트 참조:
'야생조류 필드 가이드'의 저자인 박종길 선생님이 네이처링에 올린 내 관찰에 댓글로 이 개체는 캄차카반도 일대에서 번식하는 민물도요의 아종인 kistchinski로 보인다고 알려 주심. 또, 검정과 노랑 조합의 유색 가락지는 말레이시아에서 사용하기로 했지만 아직 부착하고 있지는 않다고 하며, 이 조합의 유색 가락지 중 민물도요에 부착되어 한국에서 재확인된 사례는 적어도 70회 이상이라고 한다. (이런 정보 너무 재밌음. 핵꿀잼!!)
이번에 촬영된 이 아종은 7월 중순에 도착하는 아종에 속하며, 국내를 찾는 5~6종의 아종 중 가장 빠른 시기에 남하하는 아종이라고 한다. 지난 추석에 유부도를 찾은 분들 중 이 아종을 관찰한 분이 계신 걸 보면 유부도에서 잘 지내고 있는 듯...
들어올 땐 넓었던 백사장이 물에 잠겼다. 물을 피해 선착장으로...
물을 한 바가지 뒤집어쓰고 군산으로 돌아와서 서둘러 서울로 출발했다.
할아버지들에게 김밥을 얻어먹었지만 공식 첫 끼는 떡라면이다. 라면은 너무 맛있썽...
고작 편의점 커피를 옮겨 주기만 하는 로봇에게 4천 원이나 뜯김... (레인보우 정 차장님 보고 계신가??)
'레인보우로보틱스'의 로봇이 커피 알바를 하고 있길래 반가운 마음에 팔아준 건데...
근데 의외로 커피 맛은 고속도로 휴게소에 있는 할리스 커피보다 맛있었다. 할리스 커피는 쓰레기...
비록 넓적부리도요만 잔뜩 보고 돌아왔지만 혼자 다녀온 유부도는 좋았다.
올해는 끝인 거 같고 내년 봄에 물때 좋을 때 또 다녀오고 싶다. 내년엔 다양한 녀석들을 만날 수 있었으면...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