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2월 16일은 정말 추운 설날이었습니다.
모두 가족과 함께 명절을 보내고 있을 시간에 저는 후배랑 둘이 날이 맑다는 이유 하나로 철원으로 별을 보러 갔습니다. 원래 이 후배 녀석과 하는 일은 항상 계획 없이 즉흥적으로 벌이는 일들이 많은지라 이번에도 촬영 대상이나 준비 같은 건 하지도 않은 채 추위와 결로(結露)에 대한 준비만 간단히 해서 철원의 노동당사 앞에서 만나기로 하고는 초저녁에 각자 길을 나섰습니다.
설 연휴라 차가 많을까 걱정했는데 모두 명절이라 서울을 떠났는지 텅 빈 서울을 벗어나 철원으로 가는 길은 한산하기 그지 없었습니다.
가는 동안 차를 잠깐 세우고 하늘을 올려다보니 말 그대로 별이 쏟아지더군요.
얼굴이 금방이라도 얼듯이 얼얼할 정도로 추웠지만 쏟아지는 별을 보니 추위는 잊은 채 신이 나서 노동당사로 달려갔습니다. 한참을 더 달려서 노동당사에 도착해 보니 주차장에 가로등이 생겼더군요... (헐... ㅠㅠ)
예전엔 주차장이 어두워서 별을 보거나 촬영하기 좋았었는데 이제는 가로등이 너무 밝아서 별을 보기는 힘들겠습니다. 어쩔 수 없어 일단 그리 멀지 않은 수피령으로 이동해 보기로 했습니다.
다시 꼬불꼬불 산길을 달려 수피령에 도착해 보니 아직 눈이 수북하고 주변이 온통 얼음이었지만 다행히 별을 보기에는 충분했습니다. 조심조심 걸어 다니면 되니까요.
심한 바람에 정말 춥고 주변도 시야가 그렇게 좋은 편이 아니었지만 이렇게 많은 별을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했습니다.
원래는 10mm 광시야 렌즈로 풍경과 별을 함께 담을 생각이었지만 주변이 온통 나무여서 일주 사진을 찍어 보기로 했습니다. 벌써 밤 11시가 다 되어 오리온이 지고 있었고 곧 나무에 가리기 직전이라 서둘러 오리온 자리를 중심으로 일주 사진을 찍었습니다.
2018-02-16 22:53 (KST) @ Sangseo-myeon, Hwacheon-gun, Gangwon-do, South Korea
Canon EOS 600D + Samyang 10mm F/2.8 142 x 30sec @ ISO1600, F/4.0
DeepSkyStacker 3.3.2, Photoshop CS3
음... 역시 밋밋하군요... 크롭 바디라 광시야도 그리 넓어 보이지 않는 효과까지...
아쉬운 마음에 북극성 주변 일주도 짧게 찍어 봤습니다.
2018-02-17 00:09 (KST) @ Sangseo-myeon, Hwacheon-gun, Gangwon-do, South Korea
Canon EOS 600D + Samyang 10mm f/2.8
68 x 30sec @ ISO1600, F/4.0
DeepSkyStacker 3.3.2, Photoshop CS3
이것도 밋밋... 북극성 일주는 시간이 길어야 볼만 한데... 30분 정도로는 어림도 없네요.최소 2시간은 찍어줘야 할 거 같습니다.
사실 날씨가 맑아서 별빛 쐬러 온 거지 딱히 뭘 찍으려고 계획하고 온 게 아니라서 더 찍을 만한 것도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주변 시야도 너무 가려서 더 볼 수 있는 것도 없고요.
벌써 철수하자니 아깝고... 철원까지 왔는데 노동당사는 담아가야지 싶어서 다시 노동당사로 돌아왔습니다. (노동당사 주변은 대남 방송이 아주 또렷이 들리더군요. 이 동네 사시는 분들은 밤에 시끄럽겠습니다)
노동당사는 자정이 넘어서 그런지 조명을 껐더군요. 다행이다 싶어서 중앙에서 노동당사를 배경으로 남들 다 찍어보는 일주 사진을 찍었습니다.
2018-02-17 01:44 (KST) @ Cheorwon-eup, Cheorwon-gun, Gangwon-do, South Korea
Canon EOS 600D + Samyang 10mm F/2.8
60 x 30sec @ ISO1600, F/4.0
DeepSkyStacker 3.3.2, Photoshop CS3
조명도 꺼졌는데 노동당사가 꽤 밝죠? 촬영 중간에 택시가 쌍라이트를 켜고 지나가는 바람에... 그것도 왕복으로...
별이 안찍히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다행히 빠진 거 없이 다 나왔네요.
한겨울이라 바람도 심하고 엄청 추운데다 건질만 한 사진도 없는 이상한 출사였습니다만, 바쁘다는 핑계로 정말 오래도록 손대지 않았던 별 보는 일을 다시 시작하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예전처럼 자주 보거나 행성을 촬영할 기회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일주 사진이라도, 아니면 그냥 맨눈으로 별을 보더라도 자주 별빛을 쐬어줘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