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그마 60-600mm 줌렌즈가 도착했다.
이걸로 별을 찍겠다는 건 아니고 엉뚱하게도 새를 좀 찍어 보겠다고 덥석 질러버린 거...
지르고 나서 살짝 후회를 하긴 했다. 새가 어딨는지도 모르는 초보니까 일단 쌍안경이나 하나 들고나가서 동네에 사는 새나 좀 들여다보다가 할만하다 싶으면 질렀어야 했는데, 장비병에 조류 탐사라는 거창한 이름을 붙여서 일단 지르고 본 거다.
캐논 대포들을 살펴보니 망원경보다 비싸다. 뭐 그럴 만 하긴 한데 무게 하며 부피 하며 도저히 내가 다룰 물건은 아님.
포기가 빠른 편이라 캐논은 빠르게 포기하고 다른 렌즈들을 살펴봤는데...
탐론은 예전에 크게 실망한 적이 있어서 그냥 패스. 그러고 나니까 남은 건 자연스럽게 시그마였다.
다행히 시그마에 쓸만한 초망원 렌즈가 있길래 검색 좀 해보니까 해외에서는 조류 사진 찍는데 꽤 사용하는 거 같다.
그런데 이 모든 사건의 발단은...
요즘 한 창 말 안 듣는 질풍노도의 갱년기를 보내고 있는 갱년기 요정 아내가 낮에 뜬금없이 사진 하나를 보내왔다.
음... 오리?? 그것도 청둥오리?? 개천에서 놀고 있는 오리를 찍어서 보낸 것.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불안해하고 있는데 새를 보고 싶단다. 그것도 좀 큰 새들. 뭐 두루미나 독수리 같은 애들.
갱년기는 취향도 바뀌게 하나 보다. 새만 보면 징그럽다고 기겁을 하더니 그걸 보러 가자니...
그런데 나는 새라는 단어를 듣자마자 망원렌즈와 필드 스코프를 떠올리고 있었다. 움흐흐 기회다... (새는 일단 뒷전...)
철원에서 하늘을 날아다니는 독수리와 두루미는 본 적이 있으니까 한 번 데려가면 되겠다 싶은데, 멀리서 보려면 뭔가가 필요하니까. 어느 정도가 필요할까? 밤에 별이나 봤지 낮에 사물을 본 적은 거의 없어서 감이 안 온다...
찾아보니까 요즘은 새를 보러 다니는 사람들이 꽤 늘어난 모양.
동호회 같은 데 가입해서 좀 따라다니다가 장비를 구입하는 게 올바른 순서지만 그런 게 어딨어. 일단 사고 보자.
이런 이상한 사고의 흐름으로 초망원 렌즈가 내 손에 있는 것.
근데 이렇게 무거울 줄은 몰랐는데... 부피도 크고... 다루기가 만만치 않다. 풀숲에 숨어서 새가 오기를 기다려야 하나...
들고 다니면서 촬영하려면 어디 하나 부러지겠다. 아내도 살짝 어이없어하는 눈치... 뭐 시작은 내가 아니니까 괜찮다.
일단 시작은 했으니까 뭐라도 좀 찍어와야 할 거 같다. 아직 철원의 독수리들이 안 가고 남아 있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