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원 평야에 두루미가 날아오른다... 멋지다...(주르륵 ㅠㅠ) 이래서 탐조를 하나보다...
주말 오전 내내 쿨쿨 자다가 오후 늦게 집을 나섰다. 갱년기를 앓고 있는 아내가 뜬금없이 새가 보고 싶다고 해서 시작된 탐조를 하기 위해서다. 그것도 이날이 처음. 새가 어딨는지도 모르는데 일단 가보는 거다.
밤에 별도 볼 생각이니까 망원경도 싣고 항상 다니는 철원으로 출발~
두루미가 징그럽다는 편파적인 아내 때문에 일단 독수리를 찾아볼 거다. 독수리를 볼 수 있는 곳을 찾아보니까 '민통선한우촌'이란 곳에서 먹이를 줘서 그 주변에 좀 몰려 있는 모양.
도착해 보니 독수리는 흔적도 없고 까치랑 까마귀만 앉아있었다. 논에는 머리를 처박고 뭔가를 열심히 먹고 있는 오리같이 생긴 애들이 좀 있는 거 말고는 보고 싶었던 독수리는 없었다. 늦게 출발한 데다 차가 막혀서 1시간 뒤면 해가 질 시간이다. 어딨는지도 모를 애들을 찾을 시간이 없어서 독수리는 빠르게 포기하고 두루미를 찾으러 출발했다.
꼬불꼬불 산길을 돌고 돌아 철원 평야 쪽으로 이동을 하고 있는데 아내가 소리를 지른다.
'여보 여보!! 두루미 두루미!!!'
'두루미이???? 어디 어디??'
주위를 둘러보니 세상에... 정말 두루미 세 마리가 논 위를 걷고 있었다!!
주위와 어울리지 않는 우아함... 뭔가 이질적인데 또 잘 어울리는 절묘함...
실제로 두루미를 보니까 드는 생각이었다. 마치 다른 세계에서 온 것처럼 현실감이 떨어지는 모습.
걸음이 어찌나 빠른지 벌써 저만치 가버린 두루미... 일단 촬영! 그런데 일반 카메라를 사용해 본 지 너무 오래됐다...
조작이 서툴러서 움직이는 애들한테 초점 맞추기도 버겁다. 이거 설정을 어떻게 했더라... (-_-;);;
초점이고 뭐고 구도 같은 것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일단 찍고 보는 거다.
두루미가 어찌나 큰지 선 키가 우리 마누라만 하던데, 600mm로 이렇게 작게 나오면 다른 새들은 얼마나 가까이 가야 화면에 꽉 차게 찍을 수 있는 걸까? 망원에는 풀 프레임이 안 어울리는 듯...
그 와중에 아내가 투덜거린다. 쌍안경으로 보나 눈으로 보나 똑같다나... 쌍안경을 거꾸로 보면서 저런 소릴 하는 거다...
쌍안경 사용법을 알려주니까 그제서야 신나 한다. 두루미 징그럽다더니 너무 우아하고 예쁘단다...
곧 날아가 버린 두루미 가족.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머리가 노란 녀석은 어린 녀석이었다. 아마 나머지 성체 두 마리가 부모가 아닐까 추측해 본다. 다른 두루미들도 거의 세 마리씩 다니는 걸 보면 애기 새와 함께 다니는 습성이 있나 보다.(뇌피셜)
다른 두루미를 찾으러 토교 저수지 부근으로 이동했는데 이 저수지 주변엔 논마다 두루미 가족들이 있었다.
역시 여기서도 세 마리씩 다니는 두루미. 사진 속의 두루미는 재두루미다. (색이 진한 녀석이 어린 두루미.)
야생 두루미를 직접 보게 되다니... 탐조가 생각보다 더 재밌었다!! 두루미 싫다던 아내도 너무 좋단다.
몇 종류의 두루미가 철원에 왔는지 모르겠지만 이날 두루미와 재두루미를 볼 수 있어서 초보로서는 대만족.
카메라와 씨름하는 동안 날아가 버리는 두루미...
그 옆 논에도 두루미 가족이 있었지만 방해하기 싫어서 그냥 멀리서 눈으로만 바라봤다.
이런 아름다운 생명체는 꼭 지켜야 한다는 생각도 드는 것이 탐조 한 번 나가고 철드나 보다.
두루미 말고도 논에는 오리 같은 녀석들이 잔뜩 있었는데 모두 고개를 박고 뭔가를 먹고 있어서 얼굴을 볼 수가 없었다.
등하고 궁둥이만 봐서는 무슨 새인지 알 수가 있나... 탐조 초보한테는 너무 어려운 일...
마침 고개를 든 녀석이 하나 있어서 도감하고 비교해 보니 '쇠기러기'였다. 미안하다 오린 줄 알았다...
금세 해가 지면서 이렇게 첫 탐조는 막을 내리는데...
이날 촬영하면서 느낀 문제점. 카메라 사용법부터 숙지해야겠다. 연속 포커싱 옵션도 못 찾아서 일일이 한 장씩 초점 맞추고 촬영을 했는데도 절반 이상이 초점이 나갔다. 실제로 두루미는 제대로 맞은 게 하나도 없었다. 죄다 논 바닥에 초점이...
그리고 무슨 생각으로 일반 카메라도 없는데 캐논 EF 렌즈를 샀을까? 이날 촬영한 카메라는 천체 촬영용인 캐논 EOS Ra였다. 그 바람에 보정을 해도 붉은 기운을 줄이기가 힘들었다. 소니 A7 MkIII 카메라가 있는데 왜 굳이 캐논용으로 구입을 했는지 후회가 막급... 급하지도 않은데 생각 없이 덥석 렌즈부터 산 게 화근이었다.
집에 와서 소니 A7 MkIII 카메라에 EF 변환 어댑터 달고 시그마 60-600mm 렌즈 장착해서 테스트를 해봤더니 다행히 초점도 빠르게 잘 잡히고 사용하는데 지장이 없어 보인다. 천만다행이지... 자칫 카메라도 새로 살 뻔...
돌아오는 주말에는 제대로 두루미를 촬영해보고 싶다. 두루미들이 곧 돌아갈 텐데 시간이 얼마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