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푹푹 찌는 날이었다. 폭염주의보가 내려진 뜨거운 날 올림픽공원으로 탐조를 다녀왔다.
역시 별은 추워야 제맛이고 새는 더워야 제맛(?)은 아닌 거 같고... 비가 그친 거에 신나서 날씨 생각을 못했다...
오늘은 올림픽공원의 서쪽을 돌아볼 생각이다.
음악 분수가 있는 호수로 내려가는데 큰부리까마귀가 껙껙 시끄럽게 울고 있다. 까치가 없으니 이 놈이 왕노릇.
잎이 우거진 나무를 발견하면 일단 자세히 살펴봐야 한다. 작은 새들이 잔뜩 숨어있는 경우가 많다.
호수에는 역시 지박령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진짜 망부석 될 거 같다.
이 뙤약볕에 발만 물에 담그고 멍하니 서 있는 왜가리님. 여름 지나면 보고 싶어서 우쨔...
나무그늘 아래 벤치가 시원해 보여서 잠깐 쉬었다 가려고 들어갔더니 머리 위에서 난리가 났다.
하여간 소란스런 녀석들. 참새는 온데간데없고 자작나무엔 온통 박새들 천지다.
소란한 박새들 소리에 정신이 팔렸는데 순간 찌익~ 하는 풀벌레 소리가 들린다. 짹이아빠님께 배웠던 쇠딱따구리 소리다.
역시 소리를 알아야 새를 찾을 수 있나 보다. 소리를 찾아서 살금살금 나무를 뒤졌다.
쇠딱따구리를 보느라 한참을 올려다보고 있자니 근처 어르신들이 다 쳐다보심... 데헷... 얼른 자리를 떴다.
그런데 얼마 가지 않아서 비현실적인 장면을 목격했다. 너무도 이상한... 내가 지금 꿈을 꾸고 있나?
몽촌토성 사면에 꿩처럼 생긴 생명체가 뭔가를 먹고 있었다. 그것도 암수가 동시에...
이게 뭐냥... 환한 대낮에... 그것도 산책로에서 2m도 안 떨어진 곳에서 꿩이 먹이를 먹고 있다니...
전생에 나라를 구했나... 야생 꿩을 2m 앞에서 볼 줄이야... 너무 가까워서 오히려 내가 뒤로 물러났다.
넓은 산책로라 자전거 타는 사람, 조깅하는 사람, 산책하는 사람, 나처럼 사진 찍는 인간까지...
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니는데 신경도 안 쓴다. 사실 아무도 꿩에 관심을 주지 않았다. 나만 신난 거지...
너무 진귀한 경험을 했다. 겁이 많아서 사람이 있으면 숨어 있어야 할 꿩이 비둘기처럼 대놓고 돌아다니다니...
올림픽공원에 사는 새들은 사람과의 접촉에 익숙한 거 같았다. 정말 오래오래 건강하게 살기를 기원한다.
꿩을 보고 흥분한 나머지 나무를 마구 지나쳤다. 진정해야지...
벌써 꽤 걸어서 땀도 많이 흘렸다. 잠시 쉬려고 88 호수 근처 숲길의 벤치에 앉아 물을 마시려는데...
정면에 보이는 숲 속의 좀 떨어진 나무에 뭔가가 앉아있었다. 순간 직감했다. 크헙... 오...오색딱따구리닷!!
물병은 내동댕이치고 허둥지둥 카메라를 집어 들고는 심호흡을 하고는 겨눴다. 촤르르륵...
촬영 당시는 몰랐는데 집에 와서 정리하면서 동정을 해보니까 더 귀하신 큰오색딱따구리였다.
딱따구리과는 다 그런가? 덩치는 쇠딱따구리 5배는 될 거 같은데 금세 나무를 타고 휘리릭 사라져 버렸다. 신기루 마냥...
그래도 얼굴 봤으니 됐다. 엉덩이만 본 어치도 있는데 이 정도면 대 만족이다.
88 호수에서 물총새를 보고 싶었는데 오늘도 뾰로로롱~ 날아가는 뒷모습만 지켜봤다.
물총새는 0.5초 봤지만 대신에 파랑새가 물에 몸 담그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땅바닥의 열기가 장난이 아니다. 아직 오전인데도 이러면 오후에는 엄청날 거 같다.
공원의 서쪽만 돌아보고는 더위에 기운이 빠져서 탐조를 마쳐야 했다. 다음에 또 보자 친구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