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걸어서 소풍 가던 동구릉(東九陵). 어른이 돼서는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었는데 탐조 때문에 이곳을 올 줄이야...
미끄럼 타던 왕릉은 이제 올라갈 수 없게 됐지만 40년 전의 모습과는 비교도 안되게 잘 정리된 동구릉은 산책하기에도 좋았다.
입구에서 파주 삼릉에 있던 것과 같은 역사문화관부터 둘러봤다. 내부는 촬영하기가 좀 그래서 사진은 안 남겼지만 잘 꾸며놨고 정리도 잘 돼 있어서 동구릉에 대해 약간의 지식을 안고 출발할 수 있었다.
(오늘에서야 알게 된 사실... 여기에 태조 이성계의 묘가 있었구나... 설마 내가 미끄럼 탔던 그...)
오늘 탐조 성공이다. 집에 가도 되겠다. 그동안 궁둥이만 봤던... 그렇게 보고 싶어 했던 어치를 드디어 만났다.
혼자 신나서 촐싹거리고 있는데 아내가 풀밭을 유심히 보고 있었다. 뭘 보나 했더니 얼른 와보란다. 조그마한 새가 있다고.
조그만 새? 참새? 박새?
이렇게 가까이서 되지빠귀를 본 건 또 처음이다. 풀숲에 숨으면 안 보이는 줄 아나보다. 암튼 나에겐 감사한 일...
능(陵)이 9개나 되니까 다 둘러보려면 시간이 꽤 걸릴 거 같다. 일단 하나씩 천천히 둘러보기로 했다.
일단 연못이 하나 있으니까 연못부터... 혹시 알아 물총새라도 볼 수 있을지...
연못에서 음료수도 마시고 좀 쉬다가 다른 능으로 가려는데, 옆에 앉아있던 아줌마가 왜 그냥 가냐고 한다. '으음? 무슨 소리지?' 하고 있는데 안쪽에 능이 하나 더 있으니까 보고 가란다. 아이구 오지랖 넓으시네... 우리 얘기 다 듣고 계셨던 듯. 그래도 사진 찍기 좋다고 꼭 가보라고 하시니 일단 가보기로 한다.
그렇게 숭릉으로 가는 숲길을 걷고 있는데 아내가 또 새를 하나 발견했다. 저기 있다고 손가락으로 가리키는데도 못 찾겠음... 그 바람에 새는 더 멀리 날아가 버렸다. 다행히 머리는 보이는 중...
더 깊이 날아가서 더 자세히 볼 수는 없었지만 아내와 그 아줌마 덕분에 청딱따구리도 볼 수 있었다. 역시 여자말을 들어야 하는 건가? 심각한 고뇌에 빠져있을 때 아내가 또 뭔가를 발견하고는 온몸을 써 가며 새를 찾는다. 잘 데려왔다니까...
엇! 나도 보인다!! 몇 마리가 날아다니다 나무에 앉았다.
아... 정말 말도 안 된다. 큰오색딱따구리 세 마리를 동시에 보게 되다니... 아내 안 데려왔으면 어쩔 뻔...
사랑해요 동구릉... 아니 사랑해요 마누라...
숲에서 되지빠귀 노랫소리가 들린다. 어디서 노래하는 겨... 한참을 둘러보다가 입에 벌레를 잔뜩 물고 있는 되지빠귀를 발견했다. 아마 새끼를 부르는 모양이다.
9개의 능을 다 돌아보기도 전에 하늘이 너무 어두워졌다. 곧 비가 쏟아질 듯한 기세...
못 돌아본 곳은 다음 기회에 돌아보기로 하고 일단 오늘은 여기까지로...
엄청난 경험을 안겨준 동구릉. 다음에 다시 시간을 내서 방문해 보고 싶다. 일단 여름 지나서 가을이나 겨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