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이런 얘기를 들었다. '요즘 누가 사진을 찍어 동영상 촬영을 하지'.
처음엔 그럴 리가 없다고 열심히 부정을 했는데, 요즘 들어 새의 소리와 동작 등을 더 생동감 있게 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물론 사진으로 생동감을 표현하는 능력자들도 있겠지만 나 같은 사람에게는 애초에 무리다. 초점 안 나가게 촬영하는 것도 허덕이는 판에 무슨 생동감...
그러다 사진 촬영 중간중간에 동영상으로 몇 번 새를 촬영해 보니까 현장감도 좋고 새의 동작이나 소리를 함께 저장할 수 있으니까 새의 습성을 이해하는데도 아주 좋았다. 왜 진작 안 했나 싶을 정도... 문제는 소니 A1의 손떨림 보정 기능이 아주 쓰레기라는 거다. 촬영한 영상을 보고 있으면 멀미가 날 정도...
고민 끝에 기존의 소니 A1은 공릉천이나 갯벌같이 탁 트인 곳에서 600mm에 특화시켜서 운용하고 공원이나 하천 등 이동이 많은 곳에서 사진이나 동영상 촬영에 사용할 새로운 카메라 바디를 추가 구매하기로 마음먹었다.
일단 후보로는 동영상이 끝내준다는 니콘의 새로 나온 따끈한 Z8과 연식이 좀 됐지만 아직까지도 인기인 캐논의 R5.
먼저 니콘은 작고 가벼운 500mm PF 단렌즈가 있어서 사용해 보고 싶었는데, 해외 조류 사진가들의 리뷰를 보니까 Z8의 조류 AF가 아주 똥이었다. 콘트라스트가 떨어지는 환경에서는 거의 무용지물처럼 느껴짐... 숲속처럼 저조도 환경에서는 초점이나 잡을 수 있을까 싶을 정도였다. 손떨림 보정은 캐논, 소니보다 우수하다고 하지만 초점을 잡을 때 얘기고, 잠시도 가만있지 않는 새를 촬영하는데 AF가 말을 안 들으면 곤란한다. 니콘 FM2 이후로 다시 니콘을 써보고 싶었지만 포기.
남은 건 캐논인데 R5는 나온 지 좀 된 모델이라 안정화가 많이 이루어져 있어서 큰 이슈는 없어 보였다. 문제는 R5가 이제 끝물이라 내년에는 R5 Mark2가 나온다는 소문이 무성한 시점이라 이걸 기다려야 하나 싶고 선뜻 구입하기가 어려웠다. 그렇게 고민만 하고 있는데 갱년기 요정 아내가 쿨하게 한마디 한다.
'신형 나오면 또 사면되죠. 얼른 사요.'
아... 정말 장가 잘 갔다... 전생에 이순신 장군 근처에서 노 젓던 '수병3' 쯤 되나 보다...
아내의 얘기를 듣자마자 바로 냅다 질렀다. 렌즈는 고민할 게 없어서 RF 100-500mm로 그냥 결정. 500mm에서 f/7.1로 좀 어두운 것이 마음에 걸렸지만 캐논은 선택지가 없었다. 거기다 캐논의 RF 100-500mm 렌즈는 소니의 EF 100-400mm GM 렌즈 보다 더 좋은 평가를 받고 있기 때문에 딱히 문제가 될 건 없었다.
기존에 사용하던 소니의 A1+100-400mm GM 조합과 비교해 보니 길이는 거의 차이가 안 난다. R5가 바디가 조금 더 커서 손에 잡는 느낌은 더 좋았다. 하지만 버튼이나 휠 등의 재질이 싸 보이고 조작감도 떨어진다. 생각해 보니 캐논은 항상 그랬던 거 같다. 셔터도 소니에 비하면 깊이가 얕고 가볍다. 전체적인 마감이나 재질, 조작감 등은 소니 A1이 좋았다. 플래그십 바디와 비교하는 게 말이 되나 하겠지만 얼마 전에 사용했던 소니의 A7R5 아니 더 오래된 A7III와 비교해도 그렇다.
무게는 캐논 R5+100-500mm 조합이 88g 정도 더 가벼웠는데, 소니는 렌즈 코트도 씌웠고 렌즈 풋도 바꾼 상태라 정확한 비교는 아니지만 무게는 거의 차이가 안 난다고 생각하면 될 거 같다. 휴대성은 둘 다 좋다는 것.
나무 사이의 새를 가정한 테스트로 실내에서 복잡하고 어두운 전선 뒤의 물체를 잡는 AF 테스트를 해 봤는데... 아주 뚜렷한 윤곽의 대상이 아니면 AF가 많이 느리고 버벅거렸다. 소니 A1의 AF 속도에 익숙해서인지 너무 답답했는데, 이상태라면 나뭇가지나 나뭇잎 사이에 있는 새에 초점을 맞출 수나 있을까 걱정이 된다. 이건 실제로 사용해 보면서 테스트를 해야 할 거 같다.
플래그십 바디랑 비교하는 건 말이 안 되기 때문에 소니 A1만큼의 빠른 AF를 바라는 건 아니지만, 좀 느리더라도 원하는 대상에 정확하게 초점을 맞출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이건 실제 필드에서 사용해 보면서 확인해야 하겠지만 먼저 카메라와 익숙해지는 게 필수인 거 같다.
마지막으로 캐논 R5를 쪼물딱 거리면서 느낀 가장 큰 장점은 버튼의 개인화 설정이 끝판왕이라는 거다. 소니 A1도 커스텀 설정 버튼이 여러 개 있지만 버튼에 하나의 기능만 할당할 수 있다. 하지만 캐논 R5는 사용하는 설정 세트 자체를 버튼에 등록할 수 있었다. 이거 완전 대박이다.
예를 들어, 일반적인 환경 즉, 땅이나 나뭇가지에 있는 새를 촬영하는 상황에 맞는 촬영 설정이 있을 것이고, 빠르게 날아가는 새를 촬영하기 위한 설정이 있을 거다. 이 두 환경을 각각 커스텀 설정에 등록하고 불러와서 사용하는 게 일반적인데, 소니 A1은 이 커스텀 설정을 다이얼에서 선택해서 불러와야 한다. 하지만 캐논 R5는 원하는 버튼에 등록할 수 있어서 갑자기 날아가는 새를 발견했을 때 그냥 등록한 버튼만 누르고 있으면 해당 설정으로 즉시 전환되기 때문에 별다른 조작 없이 빠르게 촬영 설정을 동체 추적 상태로 전환할 수 있다. 그리고 버튼에서 손을 떼면 이전 설정으로 돌아온다. 정말 편리한 기능이다.
확실히 캐논이 소니보다 실제 촬영 현장의 상황에 대한 이해가 높은 거 같다. 소니는 그지 같은 메뉴부터가 문제...
오랜만에 캐논 카메라를 사용하게 됐는데 빨리 촬영해 보고 싶다. 손에 익어야 제 성능을 쓸 수 있을 거라 항상 휴대할 생각이지만 일단 비가 좀 그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