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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찰기록/자연 관찰기

[2023년 7월 19일] 철원 소이산 탐방로 탐조

by 두루별 2023. 7. 23.

오랜만의 맑은 날씨다. 장마 중간에 만나는 이런 맑은 날은 기분이 참 좋다. 월령도 좋아서 별을 안 볼 수 없는 날. 밤에는 별을 보고 낮에는 탐조를 할 생각으로 일찌감치 철원으로 향했는데 날씨가 좋아서 가는 내내 신이 난 상태였다. 두둥...

지난주 방문 때처럼 소이산 탐방로 주변에서 탐조를 했는데, 많은 종의 새를 만날 수는 없었지만 많이 걷지 않고 좋은 경치를 보면서 조용하게 탐조를 할 수 있어서 좋았다. 서울에서 쉽게 볼 수 없는 새들도 만날 수 있어서 별 보기 전에 편하게 탐조하기 좋은 코스다.

철원의 평범한 시골 풍경. 정말 아름답다. (여름 한정. 겨울은 열라 춥다)
첫 손님은 제비(참새목 / 제비과, 여름철새). 벌레를 잡았다.

늦은 오후지만 머리가 따가울 정도로 해가 뜨겁다. 새들도 그늘에서 쉬고 있을 것만 같은 날씨였지만 제비들이 열심히 사냥을 하고 있었다. 캐논 R5로 날아다니는 새를 촬영하는 건 정말 어렵다. 진짜 기술이 필요함... 

한참을 날아다니던 제비들이 한곳에 모여 앉았다.
밑에서 열심히 촬영을 하는데도 관심을 두지 않는다. 쿨한 제비들.
알락할미새 유조 추정. (얘는 나를 보더니 바로 날아가 버림)

앗! 제비 근처에서 처음 보는 녀석 발견!! 알락할미새 유조로 추정된다. 등을 좀 보고 싶은데 이대로 날아가 버림...

지난주에는 물이 콸콸 흐르던 수로가 며칠새 물이 말라서 얕은 물이 졸졸 흐르고 있었는데 완전 새들의 천국이었다. 날이 더우니까 새들이 모여서 흐르는 물에 목욕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알락할미새(참새목 / 할미새과, 여름철새)
방금 목욕을 했는지 흠뻑 젖어있다.
물을 털어 내고는 표로록 날아갔다.
엇! 수로 안에는 갤주님이 계셨다.
왜가리(사다새목 / 백로과, 여름철새)

이 얕은 물에도 물고기가 있나 보다. 왜가리가 나를 보더니 슬금슬금 상류로 올라간다. 근데 이 왜가리 뭔가 좀 다르다...
눈도 좀 퀭하고... 부리도 많이 상했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느낌상 나이를 많이 먹은 녀석 같았다. 괜히 따라다니면 날아가는데 힘쓸까 봐 슬쩍 보고는 논으로 다른 새를 찾아 나섰다.

수로에서 까치(참새목 / 까마귀과, 텃새)가 개구리를 잡았다.
불쌍한 개구리... 까치에게 열라 두들겨 맞는다.
쫙 뻗은 개구리를 까지가 낼름...
물총새(파랑새목 / 물총새과, 여름철새, 텃새)가 논 위에서 정지 비행을 하고 있었다.
물고기를 발견했는지 갑자기 날개를 접더니...
쏜살같이 내리꽂는다. 매인 줄...
사냥은 실패했나 보다. 물기를 털더니 멍하니 앉아있다.
노랑할미새(참새목 / 할미새과, 여름철새)
나를 보더니 수로로 냅다 뛰어든다.

날이 더우니까 노랑할미새도 열심히 목욕을 한다. 뙤약볕에 서서 보는 나도 뛰어들고 싶었다.

수로 근처에는 노랑할미새가 많았다. 이곳에서 번식을 한 모양이다.
뜬금없이 날아가는 멧비둘기(비둘기목 / 비둘기과, 텃새)
밀잠자리(잠자리목 / 잠자리과)
슬쩍 왜가리는 잘 있나... 확실히 부리가 많이 상했다... 마음이 쓰이는 녀석...

왜가리가 자꾸 신경이 쓰였다. 어디 아픈가? 힘도 없어 보이고... 연륜이 느껴지는 왜가리가 왠지 측은했다.

그런데 이 망할 EOS R5는 조도가 낮거나 콘트라스트가 조금만 떨어져도 초점을 못 찾고 앞뒤로 왔다 갔다 난리가 난다. 왜가리를 촬영하는데 거의 초점을 못 맞춤. 새의 눈을 인식해서 초점이 맞았다고 표시가 돼도 촬영해 보면 핀이 나가있었다. 이런 엉터리 AF는 또 처음 보겠네... 해외 리뷰에선 캐논의 AF가 70% 성공이라고 했는데 잘 쳐줘야 40%다. 똥손인 나도 문제지만 소니 A1에서는 너무 쉽게 하던 걸 R5에서는 죽을힘을 다해야 하니까 힘들어 죽겠다. 이렇게 크고 가까이 있는 새도 초점을 못 잡으면 어쩌라는 거... RF 100-500mm 렌즈 때문에 소니 A1으로 촬영하고 싶다가도 캐논을 꺼내게 된다...

그 와중에 중대백로(사다새목 / 백로과, 여름철새) 등장.
거리가 꽤 있는데도 물음표 목을 하고는 나를 빤히 쳐다본다.
RF 100-500mm 렌즈는 배경 흐림이 자연스러워서 좋다. (소니야 좀 배워라...)
내가 신경쓰였는지 자리를 옮기는 중대백로.

백로처럼 대비가 엄청 뚜렷한 대상은 또 아주 초점을 잘 잡는다. 아 정말... 내다 버리고 싶은 카메라다. 이런 게 고급기라니...

카메라 때문에 짜증이 났지만 아파 보이는 왜가리가 궁금하다. 그런데 들여다보다가 나 때문에 날아갈까 봐 궁금해죽겠는데 수로를 들여다볼 수가 없었다. 에잇... 산 쪽으로 가봐야겠다.

늦은 오후라 숲으로 들어가니까 껌껌하다. 갑자기 모기가 떼로 달려드는 바람에 입구컷... 논으로 쫓겨 나오는데 이상한 울음소리가 들린다. 조심조심 소리 나는 곳을 살펴보니 나뭇잎 사이로 새가 보였다. 

벌레를 물고 있는 칡때까치(참새목 / 때까치과, 여름철새)
새끼를 부르는 거 같았는데 여기서도 방해가 될까 봐 슬금슬금 철수...

육추 중인지 벌레를 물고 누군가를 계속 부르고 있었는데, 건너편 수풀에서 유조로 보이는 칡때까치를 언뜻 본 거 같았다. 이 칡때까치도 AF가 안 돼서 수동으로 촬영을 했는데 이 정도는 이해할 수 있다. 

꼬리조팝나무의 꿀을 빠는 호랑나비(나비목 / 호랑나비과)

호랑나비에게 정신이 팔려 있는데 특유의 끅~끅~ 하는 울음소리가 나더니 파랑새가 가까운 전선에 내려앉았다.

머리가 커서 앞으로 쓰러질 거 같은 파랑새(파랑새목 / 파랑새과, 여름철새)
당근색 부리에 검은 머리. 그리고 초록빛 몸통의 파랑새. 잘생겼...

파주 공릉천 이후로 이렇게 가까이서 파랑새를 보는 건 오랜만이다. 맨날 날아가는 모습만 봤지 앉아 있는 모습 자체가 오랜만. 소니의 FE 200-600mm 렌즈와 캐논의 RF 100-500mm 렌즈로 촬영한 파랑새를 비교해 보면 확실히 캐논의 RF 100-500mm 렌즈의 화질이 더 좋고 배경과 대상의 분리도 아주 자연스럽다. 캐논이 렌즈 맛집. 바디는 쓰레기...

궁금함을 못 참고 살짝 수로 안을 들여다보니까 갤주님이 개구리를 잡으셨다!! 짝짝짝~

개구리를 사냥한 왜가리

사냥한 개구리를 바로 먹지 않고 물에 계속 씻기만 하는 왜가리. 왜 그러는 걸까... 너구리처럼 먹이를 물에 씻어 먹나?
한참을 지켜봐도 물에 씻기만 할 뿐 먹을 생각을 안 한다. 이때 새소리가 들려서 올려다보니 전선에 때까치가 앉아있었다.

때까치(참새목 / 때까치과, 텃새)
칡때까치도 보고 때까치도 보고 조복이 좋은 날이다.
다시 수로 안을 들여다 보니까 개구리를 꿀꺽 하신 모양이다.

정말 늙은 왜가리가 맞는 거 같다. 털도 윤기가 없고 힘들어 보인다. 나이 먹는 건 사람이나 동물이나 힘든 일이다. 
먹이가 풍부한 여름에 개구리라도 많이 잡아먹고 기력을 좀 찾아야 할 텐데 내가 다 안쓰럽다. 

연못에서 열심히 물 안쪽을 노려보는 물총새.
팟! 순간 날아 올랐다!
퐁당~
사냥 실패... 쫄딱 젖었다.
깃털에 묻은 물기를 열심히 털어내는 중...
사냥해서 성공하는 걸 본적이 없는 물총새. 먹고 살기가 어렵구나...
물총새의 사냥 모습을 코 앞에서 보다니...

조그마한 저수지에서 물총새가 열심히 사냥을 하고 있었는데 그 모습을 몰래 숨어서 지켜봤다. 논 주변에 이런 작은 저수지가 몇 군데 있었는데 그래서인가 이곳에는 물총새가 많이 살고 있었다. 귀한 물총새를 이렇게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일이다. 사냥 좀 잘해서 번식도 좀 잘하기를... 사냥 성공하는 걸 못 봤다...

때까치로 착각한 참새찡.
수로에선 아직도 노랑할미새들이 목욕 중이다.
참개구리(개구리목 / 개구리과)
발 밑에서 뭔가 열심히 먹고 있는 녀석 발견.
멧새인 줄... 방울새(참새목 / 되새과, 텃새)였다.
전선에도 잔뜩 앉아있던 방울새.
멀리 큰부리까마귀(참새목 / 까마귀과, 텃새)들이 날아간다.

벌써 해가 산 너머로 넘어가려 하고 있었다. 먼 거리를 걷지는 않았지만 천천히 새들을 보면서 다녔더니 벌써 시간이 훌쩍 지났다. 나도 이제 마무리할 생각으로 주차장으로 가고 있는데 논에 세워둔 기둥에 물총새가 날아와 앉았다.

와... 역대급으로 가까운 거리다. 아직 나를 발견하지 못한 거 같다. 여기서 크게 움직이면 바로 날아갈 거 같았다. 

10미터도 안 떨어진 곳의 물총새.
아유 깜짝이야... 드..들켰나??
못본 모양이다... 휴...
옥수수 뒤에 숨어서 조금 더 접근했다... 살 떨린다...
깃털 하나하나가 보인다... 정말 아름다운 새다.

옥수수에 가려서 나를 보지 못한 거 같다. 살금살금 최대한 접근해서 촬영을 하려는데... 이 망할 카메라가 또 초점을 못 잡는다. 정말 어이가 없다. 이 정도 대비에도 초점이 널을 뛴다. Eye AF는 이번에도 구라 핀이다... 진정하고 수동으로 초점을 맞췄다. 우와... 깃털이 분리되어 보인다. 정말 가까운 거리다. 곧 날아갔지만 물총새를 이렇게 가까이서 보다니... 

물총새를 보고 나니까 멧비둘기(비둘기목 / 비둘기과, 텃새)는 오징어로 보인다.

주차장으로 가는 길에 있는 작은 수로에서 처음 보는 새를 발견했다. 일단 모른 척 지나간 후에 살금살금 돌아와서 촬영을 했어야 했는데 깜짝 놀라서 멈추니까 그 녀석도 나를 보고는 놀라서 날아가 버렸다. 확실하진 않지만 흰배뜸부기로 보였는데 다음에 다시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렇게 조복 넘치는 탐조를 마치고 관측지에 도착해서 해가 지기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산에서 울던 뻐꾸기가 가까운 나무에 내려앉았다. 세상에 이런 일이... 카... 카메라를...

뻐꾸기(뻐꾸기목 / 뻐꾸기과)

울음소리는 자주 들었지만 실제로 뻐꾸기를 본 건 처음이었다. 너무 구슬프게 울길래 처음엔 새끼를 부르나 보다 했는데 생각해 보니까 남의 둥지에 알 낳고 도망가는 놈이라 육추를 할리가 없었다. 그냥 암컷을 부르는 모양.

열심히 울던 녀석이 나랑 눈이 마주치자 F*ck 하고 날아감. 은근히 기분 나쁘네...

볕이 정말 뜨거운 날이었지만 코앞에서 물총새도 보고 뻐꾸기도 보고 이런 날이 또 있을까 싶다. 온통 새카맣게 탔지만 많은 새들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