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 때문에 미루고 미루던 「푸른수목원」을 짹이아빠님과 드디어 다녀왔다.
전철 천정에 돌아가는 선풍기가 달려있던 시절에 타본 이후로 오랜만에 1호선도 타보고 나름 즐거운 여행이었다.
'이름이 설마 온수/냉수 할 때 그 온수는 아니겠지?' 라고 생각하며 도착해 보니 진짜 따뜻한 물이라는 뜻...
아마 옛날에 이곳에 온천이 있었나 보다. 쓸데없는 잡지식에 빠져 있는 사이 짹이아빠님이 도착. 함께 푸른수목원으로 향했다.
걸어가기는 좀 먼 거리라 온수역 앞에서 항동지구 방향으로 가는 마을버스를 타야 한다. 같은 번호인데 가는 곳이 다르니까 잘 보고 타야 함. 사실 나는 처음이라 짹이아빠님이 가는 대로 따라만 다녔다... 졸졸졸...
드디어 푸른수목원 도착! 푸른수목원은 항동저수지와 같이 붙어 있는 구조인데, 저수지에서는 물에 사는 새들을 보고 수목원에서는 숲에 사는 새들을 보는 그런 코스. 나름 알차다.
오늘의 목표종은 덤불해오라기와 쇠물닭. 덤불해오라기는 8월이면 돌아가는 녀석이라 지금 아니면 기회가 없다. 자주 오기 힘든 곳이라 오늘 꼭 봐야 한다!! 그렇게 아침부터 뜨거운 뙤약볕 아래에서 탐조는 시작되었다...
연꽃과 수련의 차이는 뭘까? 1995년까지는 아무도 그 차이를 몰랐다고 함. 구분하는 법은 잎이나 꽃 모두 물에서 멀찍이(30cm 이상) 떨어져 있으면 연꽃이고 잎도 꽃도 위의 사진처럼 물에 붙어 있으면 수련이라고... 잡지식 하나 또 늘었다.
오전인데도 너무 뜨겁다. 머리가 지끈거릴 정도. 짹이아빠님의 핸드폰은 열기에 과열되어 촬영이 안되신단다. 얼음팩까지 챙겨 오시는 준비성에 감동했다... 그늘도 없어서 햇볕을 피할 방법도 없다. 그냥 참고 갈대숲에서 부지런히 덤불해오라기를 찾았다.
역시 조복은 지지리도 없다. 한참을 돌아도 익숙한 녀석들만 보일 뿐 덤불해오라기하고 쇠물닭은 코빼기도 안 보인다.
짹이아빠님 말씀으로는 덤불해오라기는 몰라도 여기서 쇠물닭 못 보면 문제 있다던데... 내 조복은 심각하게 문제가 있다.
중간에 만난 젊은 탐조인도 덤불해오라기를 봤다던데 나만 못 봤다... ㅠㅠ
저수지는 너무 뜨거워서 일단 푸른도서관 뒤편의 산에서 잠시 탐조를 하기로 했다. 여기서 실수...
요즘 너무 잘 걸어 다녀서 건강이 좋아졌다고 자만하고 있었는데, 이날 등산 아닌 등산을 하고는 몸이 망가졌다. 전날도 낮에 탐조를 하고 밤에 별까지 보고 왔는데 잠도 못 자고 또 탐조를 왔으니 몸이 멀쩡할 리가 없다...
여기부터는 죽을힘을 다해 짹이아빠님을 따라다녀야 했다. 그래도 새소리를 들으면 허리 아픔도 잊게 된다.
산을 타고 내려왔지만 새소리도 많이 들리지 않았고 숲이 울창해서 새를 발견하기도 어려웠다. 역시 숲 탐조는 어렵다.
푸른 몸통에 하얀 꼬리면 다 '밀잠자리'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네이처링」에 밀잠자리라고 올렸더니 바로 정정해 주심. 큰밀잠자리, 밀잠자리붙이 등등 밀잠자리도 종류가 다양하다는 걸 알게 됐다. 역시 집단지성이 최고다!
지쳤다... 날도 너무 덥고 힘에 부친다. 당분을 섭취하고 시원한 데서 잠시 휴식이 필요했다. 다행히 저수지 근처에 미니 카페가 있었다. 여기저기 자판기가 많은 올림픽공원이 최고지만 카페라도 있으니 다행이었다.
시원하게 레모네이드 한 잔 하면서 HP 충전. 쪽 빠니까 한 모금 컷... 아쉬운 대로 숨을 돌렸다.
쇠물닭의 흥분이 가라앉을 무렵 짹이아빠님이 저수지 가운데에 있는 갈대숲에서 물총새를 발견하셨다. 존경스럽다. 난 쌍안경으로 봐도 잘 안 보인다.
시간이 많이 지났다. 이제 슬슬 지쳐가는데 덤블해오라기는 볼 수 없었다. 짹이아빠님은 올 때마다 덤불해오라기를 보셨다는데 왜 나만 오면 사라지는 걸까... 새덕후 굿즈 중에 조복 상승하는 마법의 후드티가 있던데 그거라도 사 입어야 하나...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저수지 건너편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쪽에서는 갈대숲 반대편이 보인다.
머리 위로 어지럽게 왜가리 두 마리가 날아다닌다. 아유 정신 사나워...
그렇게 왜가리에 정신이 팔려있는데 갑자기 바로 코 앞에서 갈대를 헤치고 덤블해오라기가 나타났다!!
덜덜덜... 어... 어서 촬영을... 망할 카메라... 초점을 못 잡는다... 수.. 수동으로...
아... 카메라가 초점을 못 잡고 우왕좌왕하는 사이... 덤불해오라기는 다른 갈대숲으로 들어가 버렸다...
아아... 캐논 진짜... AF 똥망이다... 코앞에 있는데 그걸 못 맞추냐고...
거기다 갑자기 튀어나온 데다 생각보다 너무 작았다. 닭정도 되려나? 어버버버 하다가 궁둥샷만 건지고 말다니...
그래도 이게 어디여!! 실제로 봤다는 게 중요한 거다!!
오늘은 여기까진가 보다. 더위에 기력을 모두 소진했다. 오는 길에 지하철에서 서서 졸았다. 나 때문에 짹이아빠님이 너무 고생하셨다. 그래도 덕분에 덤불해오라기도 보고 쇠물닭도 봤다. 오늘 목표는 모두 이룬 셈.
푸른수목원은 수목원이라기보다는 공원에 가까운 느낌이었다. 편하게 걸을 수 있는 그런 공원. 옆에 저수지가 붙어 있지만 갈대가 높이 자라버린 한여름에는 새를 보기가 쉽지 않을 거 같다. 초여름이나 가을에 다시 방문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