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여행 둘째 날. 아침에 일찍 탐조 갈 예정이었는데 몸이 천근만근이다. 전날 동백동산에서 고생해서 그런 듯... 여기저기 쑤시고 컨디션 제로. 나를 깨우던 아내도 깨우는 척하다가 피곤했는지 도로 침대에 누웠다.
정신 차리고 숙소를 떠난 시간은 8시가 훌쩍 넘은 시각. 종달리 전망대 근처 해안가에 도착하니 거의 10시였다. 해안가는 어제와 달리 물이 가득 차 있었는데 해안가 탐조를 오면서 만조 시간을 확인하지 않은 실수였다. 한적하고 조용한 종달리 해안 갯바위에는 노랑발도요 무리가 돌아다니고 있을 뿐 다른 새는 보이지 않았다.
파도가 높아 보였는데 갯바위에서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노랑발도요가 신기했다. 너희라도 봐서 다행이다...
해안 도로를 따라 내려가며 새를 찾아봤지만 새는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제주도는 의외로 해안가에 새가 없다.
해안 도로를 따라 내려가다 들른 하도리 철새도래지. 한여름이라 철새가 있을 리 없지만 둘러보기로 했다.
하도리 철새도래지는 그늘이 없어서 불지옥이었다. 철새 탐조대도 있어서 들러봤는데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쌍안경도 있었지만 관리가 너무 안 돼서 초점도 맞출 수가 없었다. 그냥 뿌연 형체만 보임...
하도리 철새도래지는 11월 정도면 제법 많은 철새가 모인다고 한다. 다양한 철새를 볼 수 있다고 하는데 한여름에는 텃새 몇 마리가 전부였다. 더 있기도 힘들어서 다음 목적지인 제주자연생태공원으로 이동했다.
제주자연생태공원은 생태 체험과 동물들을 볼 수 있는 곳인데 궁대오름이 유명하다. 노랑턱멧새가 물 마시러 온다는 산속의 연못도 있어서 보호 중인 희귀 조류도 보고 탐방로를 걸으며 탐조도 할 수 있는 아주 좋은 곳이다.(거기다 공짜)
생각보다 규모가 큰 제주자연생태공원. 코스별로 다르지만 최대 2.5km를 걷는 궁대오름 둘레길도 있었다. 어제 동백동산에서 고생했던 아내가 긴장하는 거 같았다.
더운 날씨에 차양막을 치던 관계자분이 일손도 멈추고 오셔서 시설에 대해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셨는데, 노루용 먹이(나뭇잎)도 주시면서 노루 먹이 주기 체험장도 한번 들러 보라고 하셨다. 일단 주시니까 받기는 했는데... 노루 체험은 생각이 없었는데 문제다. 내가 먹을 수도 없고... 중간에 어디다 버려야 하나 고민을(이게 아주 쓸데없는 고민이었다)... 그렇게 노루 먹이를 들고는 제일 관심 있는 조류관을 먼저 둘러봤다.
매와 말똥가리라니... 물론 자연에 있는 녀석들을 본 건 아니지만 부상당한 개체를 보호하는 곳에서 본 거라 의미가 있다. 이틀 동안 본 새가 없어서 기운이 빠졌었는데 이곳에서 귀한 새들을 볼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
독수리가 엄청 크다고 아내가 놀라워한다. 올겨울엔 꼭 철원이나 포천에서 독수리를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독수리를 보고 돌아서는데 혼자 돌아다니던 노루가 손에 들고 있는 나뭇잎을 발견하고는 다가왔다. 아내는 놀라서 기절 직전...
아까 나뭇잎을 어떻게 처리할지 걱정한 건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얘가 다 먹어치움...
우적우적 나뭇잎을 씹어 먹는 노루를 보니 너무 신기했다. 그 와중에 노루의 귀를 만져보고 싶어 죽겠는데 이 녀석 교묘히 잘도 피한다. 기회를 엿보다 먹는데 정신 팔린 사이 귀를 만져 보는데 성공! 털이 뻣뻣해서 부드러운 느낌은 없었지만 도톰한 느낌이 아주 좋았다.(이제 곰 귀만 만져보면 된다...) 코는 촉촉했지만 강아지처럼 시원하지 않고 뜨뜻 미지근한 느낌... 으으...
탐방로를 따라 생태 연못까지 걸어갔는데 연못 크기가 너무 아담했다. 자연 연못은 아니고 인공 연못. 노랑턱멧새가 놀러 온다는 안내 문구가 붙어있었지만 이렇게 뜨거운 대낮에 올 리가 없지... 아내의 HP가 거의 바닥나서 궁대오름에 오르는 건 포기하고 일단 시원한 차로 피신했다.
불타오르는 주차장에서 에어컨 틀어 놓고 땀을 식히는데 동박새, 멧새가 보인다. 공원 안 보다 밖에 새가 더 많음...
제주에서 동박새는 정말 자주 볼 수 있었는데 숲에서는 참새보다 훨씬 많이 보이는 거 같다.
오전부터 돌아다녔지만 새도 별로 못 본 데다 엄청난 더위에 지쳐서 기운도 모두 소진한 상태. 점심시간도 다 됐는데 뭘 먹어야 하나 고민하던 중 길가에 보이는 '두루치기'라는 간판을 보고는 그냥 들어간 솜리식당. 여행 기간 동안 들른 식당 중에서 제일 기억에 남는 집.
완전 로컬 식당인데 반찬이 수십 가지가 넘는다. 가격도 저렴하고 음식도 너무 맛있었는데 주인아주머니도 엄청 친절하심. 또 들르고 싶었지만 동선이 맞지 않아 들르지 못했다. 다음에 꼭 다시 들러보고 싶은 곳이다.
점심 먹고 향한 곳은 한라생태숲. 여기는 다른 곳과 달리 사람들이 많았다. 지금까지 다녀본 생태숲과 달리 잘 정비가 된 곳이었는데 올림픽공원과 아주 흡사한 느낌이었다. 규모도 커서 다 둘러보려면 시간 좀 걸릴 거 같다.
한 시간 정도 둘러봤는데 큰부리까마귀와 직박구리 말고는 새를 보지 못했다. 다른 생태숲은 새소리라도 많이 들렸는데 한라생태숲은 직박구리가 없는 곳은 고요 그 자체... 아주 조용했다. 오히려 주차장에는 방울새들이 날아다녔는데 사진으로 담지는 못했다.
제주도가 생각보다 새가 없다. 정확히는 새를 보기가 힘들다. 자연환경이 좋아서 새들이 모여 있지 않은 거 같다.
해안가로 가는 길에 전날도 먹었던 수제 젤라또 가게를 다시 찾았다. 역시 더울 땐 달고 시원한 게 최고다.
도착한 동쪽 해안가는 파도가 어마어마하다. 어제는 잔잔했는데 태풍의 영향인가 보다.
해안가를 따라가며 새를 찾았지만 표로로롱 날아가는 바다직박구리를 눈으로 본 게 전부. 인천에 가면 갈매기라도 잔뜩 있는데 제주도 해안가는 신기하게도 새가 없다.
동쪽 끝에서 남쪽 해안가까지 이동하면서 갯바위를 관찰했지만 흑로는 보이지 않았고, 흔하다던 바다 직박구리도 날아가는 뒤통수만 봤을 뿐 한 마리도 보지 못했다. 내가 풀이 죽어있자 아내는 소천지를 한 번 가보자고 했다. 그 근처에서 여러 새를 본 블로그 글이 있어서인데 거리가 좀 됐지만 소천지에서 숙소는 멀지 않아서 들러보는 것도 좋을 거 같았다.
소천지로 가는 탐방로 입구에서 섬휘파람새 소리가 아주 선명하게 들렸지만 등산을 해야 할 것만 같은 길이어서 포기.
역시 태풍의 영향인지 힘들게 도착한 소천지는 출입 금지... 꼭 소천지를 볼 필요는 없지만 못 본다니 또 보고 싶...
소천지를 둘러볼 수 없게 되자 그냥 바로 숙소로 돌아왔다. 별다른 성과 없이 돌아다니기만 한 피곤한 하루였다.
내일은 새벽같이 일어나서 해안가 보다 항구 위주로 다녀보기로 했다. 탐조 시간도 중요한데 너무 늦게 움직인 게 문제인 거 같다는 아내의 생각이 맞는 거 같다. 내일은 새벽부터 탐조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