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여행 마지막 날이다. 오후에는 서울로 돌아가야 한다.
숙소에서 쉬다 공항으로 이동해도 되지만 3일 동안 새를 거의 보지 못해서 마지막 탐조를 하기로 했다. 다행히 어제 흑로와 몇몇 새를 볼 수 있었지만 제주도는 환경에 비해 의외로 새가 많지 않았다.
새벽같이 체크아웃을 하고는 섬휘파람새와 바다직박구리등이 많이 목격된 고산항구 뒤편의 당산봉을 오르기로 했다.
500mm 망원렌즈로 달의 분화구가 아주 선명하게 잘 보인다. 손떨방이 좋아서 손으로 들고 촬영해도 이렇게 나오는 걸 보면 서울에서 연사로 촬영해서 합성해 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 다음 월령에 도전해 봐야겠다.
당산봉은 올레길이 여럿 연결되어 있었는데 나는 사진에 표시된 붉은 원이 있는 지점의 작은 공터까지 차를 몰고 갔다. 차가 딱 한대 지나갈 수 있는 임도였는데 저기를 걸어서 올라온 부부를 만났는데 존경스러웠다. 난이도가 엄청남...
공터에는 정자도 하나 있었는데 주변은 온통 새소리로 가득했다. 당산봉의 정상에 올라서 새를 찾아보고 싶었는데 어디로 가야 정상인지 알 수도 없고 딱히 표시가 되어 있지도 않았다. 아내의 불안해하는 표정이...
좀 넓어 보이는 길로 등산을 시작했는데 곧바로 들리는 섬휘파람새의 울음소리! 정말 선명하게 들린다. 이번에 찾지 못하면 섬휘파람새는 영영 보지 못할 거 같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소리가 들리는 곳은 작은 나무였는데 잎이 너무 무성했다. 최대한 자세를 낮추고 나무 안쪽을 뒤지다가 드디어 작은 새를 발견했다...
이렇게 맑고 고운 소리를 내다니... 섬휘파람새는 가창력 원탑이다. 성조(成鳥)가 후~쿠루쿠~ 하고 울면 유조(幼鳥)가 후~후쿠루쿠~ 하고 대답하는 식이었는데 이소 한 지 얼마 안 됐는지 털이 아직 뽀송뽀송한 어린 녀석이었지만 소리가 너무 예쁘다.
제주도 탐조는 끝이다. 흑로에 섬휘파람새까지... 기대도 안했던 큰 수확이다. 얘 촬영한다고 모기에게 거의 헌혈 수준으로 털렸지만 촬영하는 내내 너무 흥분됐다. 정상으로 더 오르고 싶었지만 뒤를 돌아보니 아내가 거의 죽어가는 표정... 등산은 포기하고 애월읍으로 이동하기로 했다. 다양한 새를 보여준 고산은 정말 잊지 못할 거 같다.
애월항에 도착. 이른 시간이라 사람은 거의 없었지만 벌써부터 엄청난 열기에 걷기조차 힘들다.
숲속보다 확실히 민가 주변에 새가 많다. 새들도 인간 주변에 사는 게 편한가 보다. 그렇게 환경 좋은 곳을 찾아다닐 때는 안 보이던 녀석들이 마구 얼굴을 보여준다. 동네 담벼락에 차를 대고는 한참 동안 제주에서의 마지막 탐조를 했다.
이제 공항쪽으로 이동해서 점심을 먹고 차를 반납해야 한다. 하지만 아직도 시간이 꽤 남아있는 상태...
3박 4일의 제주 탐조 여행이 이렇게 끝났다. 많이 걷고 하루 종일 운전해서 피곤하기도 했지만 각종 새들을 볼 수 있어서 너무 행복한 시간이었다. 겨울에 하도리 철새 도래지에 철새 보러 다시 오고 싶다. 그때는 하도리에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