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얼마 전부터 답답해하는 거 같아서 오늘은 탁 트인 철원으로 탐조를 다녀왔다.
일단 철원은 겨울에 오면 아무것도 없어서 좋다. 넓은 평야라 탁 트인 시야에 멀리 산이 보이는 거 말고는 아무것도 없음...
오늘은 철원 이길리에 있는 '철새 도래지 관찰소'에 가서 두루미도 보고 다른 철새들도 볼 생각이었다. 항상 아침 일찍 출발한다고 큰소리쳐놓고 출발은 항상 오후... 가면서 점심도 먹고 꼼지락 거리다 보니 오후 늦게 철원에 도착했다.
그렇게 도착한 「철원 철새 도래지 관찰소」. 코로나 기간 동안 폐쇄한다고 들었는데 최근에 알아보니까 다시 운영을 하는 거 같았다. 늦게 오는 바람에 사람이 많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한산했다.
이곳 관찰소는 입장료가 있는데 1인당 15,000원(카드 가능)이다. 좀 비싸다 싶지만 이 중에서 1만 원은 '철원사랑상품권'으로 돌려주니까 실제로는 5천 원인 셈. 이 상품권은 철원에서 편하게 사용할 수 있어서 근처에서 밥도 먹고 카페도 가고 하면 된다. 지역 경제에 작은 보탬이 된다 생각하면 됨.
근데... 매표소 아가씨가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오늘은 두루미가 없어욤. 큰고니만 있는데 괜찮으세욤?'라고 한다.
잠깐만... 두루미가 없다니 무슨 소리지? 물어보니 오늘만 관찰소 앞에 두루미가 오지 않았다고 한다. 오는 날이 장날이네. 여기까지 왔는데 일단 들어가 보기로 했다.
관찰소는 컨테이너로 만들었는데 첫 컨테이너는 유리로 돼 있어서 따뜻함. 두 번째부터는 촬영을 할 수 있도록 개방이 돼 있어서 따뜻하게 입고 가야 한다. 철원 은근히 춥다...
매표소 아가씨 말대로 큰고니만 있었다. 두루미는 정말 없음... 그래도 뷰가 아주 끝내준다...
아내는 쌍안경은 내팽개치고 경치만 바라보고 있었다. 조용한 걸 보니 좋은가 보다. 한 참을 그렇게 둘이 경치를 바라봤다.
얼마나 지났을까 우연히 하천 앞쪽을 보니까 관목에 방울새와 멧새가 떼로 날아다니는 게 보였다.
한참을 기다렸지만 두루미는 오지 않았다. 더 어두워지기 전에 근처를 돌아보면서 두루미를 찾아보기로 하고 관찰소를 나와 주변 농경지를 둘러보니까 여러 마리의 재두루미와 떼까마귀 떼를 볼 수 있었다.
그때 저 멀리 논에서 어미와 새끼로 보이는 두루미 가족이 보였다!! 차로 접근하면 날아갈 거 같아서 거리가 좀 됐지만 논두렁을 따라서 조심조심 접근했다. 논두렁에는 고라니 놈들이 응가를 얼마나 많이 해놨는지 피하다가 논에 빠질 뻔...
더는 접근할 수 없었다. 괜히 날리기라도 하면... 이렇게 큰 새들은 날아오르는데 엄청난 에너지를 소모한다고 한다. 절대 날리지 않도록 조심하자. 그냥 멀리서 관찰하는 걸로...
경계를 풀 수 있도록 바로 고개를 돌리고 왔던 길로 돌아 나왔다. 슬쩍 보니까 위협이 아니라고 생각했는지 계속 먹이 활동을 하고 있었다. 기쁘다. 두루미를 이렇게 가까이서 보는 건 거의 1년 만이다.
두루미도 보고 기분 좋아진 우리는 철원 이곳저곳을 둘러보다가 저녁이 다 돼서 돌아왔다. 탁 트인 자연을 보고 와서 아내는 너무 좋았다고 한다. 다행이다. 요즘 아내는 몸도 안 좋고 이런저런 걱정에 마음도 안 좋았는데 기분 전환을 잘한 거 같다. 주말은 가족과 함께...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