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는 맨날 가던 곳 말고 아산의 갯벌로 탐조를 떠나기로 했는데 갯벌 탐조는 처음이라 떨렸다.
먼 길 갔다가 새가 없으면 낭패잖아. 처음 가는 곳이니까 미리 여기저기 알아보면서 정보를 모았다.
알아보니까 이맘때면 서해안 갯벌은 잠깐 들렀다가 가는 나그네새들이 많은 모양이다.
DC의 조류갤에 아산 사는 분이 며칠 전 갯벌에서 도요새 탐조한 사진을 올렸는데 와우!!
정말 물 반 도요새반... 도요지옥이라고도 하던데 나도 가면 쟤들을 만날 수 있을까??
부푼 꿈을 안고 출발! 거리는 집에서 100km도 안되는데 시간은 철원보다 더 걸린다. 엄청 막힌다는 얘기...
각오는 하고 출발했는데도 무슨 고속도로를 5번은 갈아탄 듯... 내비게이션 없으면 못 찾아오겠다.
그래도 미리 로드뷰로 정찰을 해놓은 덕에 한 번에 원하는 위치에 도착했다!!
만조 시간에 맞춰 도착하는 바람에 물이 찰랑찰랑하다. 이 물이 빠지면 갯벌이 나오는 듯.
처음 온 곳이라 주위를 좀 둘러보니 그물 위에 왜가리들이 주렁주렁 매달려있다. 물이 짚고 서기에는 깊은가 보다.
만조가 지났으니 이제 물이 빠지기 시작할 테니 그동안 아내와 함께 여유롭게 산책을 할 수 있었다.
살짝 걱정인 건, 갯벌키퍼스에서 보니까 아산만방조제 쪽은 탐조를 잘 안 하는 거 같던데 새가 없어서 그런 거면 어쩌나 걱정이 되긴 했지만 기다려 보고 새가 안 오면 빠르게 이동을 할 계획으로 한가롭게 오랜만의 여유를 즐겼다.
그 와중에 풀숲에서 폴짝거리며 날아다니는 붉은머리오목눈이 발견! 뱁새라 불리는 바로 그 녀석.
사진으로만 봤던 녀석을 실제로 보다니!! 이게 탐조의 매력인가 보다. 하나씩 찾아서 관찰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어디서 봤는지 기억은 안 나는데 국립공원에 서식 중인 새를 조사했더니 개체수가 제일 많은 새가 뱁새라고... 2등이 참새.
우리 주변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는 녀석인데 이제야 보다니 내가 자연에 너무 무관심했나 보다.
그렇게 뱁새 쫓아다니는 사이에 물이 빠지면서 갯벌이 보이기 시작했는데 물이 빠지는 게 보일정도.
물 들어오는 속도가 무섭다더니 빠지는 것도 순식간이다.
물이 빠지기 시작하자 어디서 날아왔는지 새들이 무리 지어 날아다니기 시작했다.
만조가 지나고 30분도 채 안 됐는데 갯벌이 드러나기 시작하자 새들이 떼로 날아와 드러난 갯벌에 내려앉기 시작.
고요하던 바닷가가 갑자기 소란스러워지면서 온통 새들의 울음소리로 시끌시끌해지기 시작했다.
도요새는 이날 처음 봤는데 울음소리도 특이하고(튬~튬~튬~~) 날아다니는 속도가 장난없다.
순식간에 모여서 내려앉자마자 엄청난 속도로 긴 부리를 이용해 갯벌을 연신 쑤셔대며 뭔가를 먹는다.
하도 정신이 없어서 처음엔 모두 같은 종의 도요새인 줄 알았을 정도...
정신을 차리고 찬찬히 카메라로 살펴보니까 서너 종류의 다른 도요새가 섞여 있는 거 같았다.
갈매기나 물떼새 같은 녀석들도 있었고 크기가 작거나 색이 다른 도요새들이 마구 섞여서는 연신 뭔가를 먹고 있었다.
카메라로는 촬영해서 확인하는 거 외에는 방법이 없었는데 이럴 때 필드스코프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처음 들었다.
그러면 촬영하기 전에 새를 충분히 관찰하고 종류를 나눠서 정확하게 촬영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달랑 카메라만 들고 왔는데, 카메라와 쌍안경을 준비해 온 두 여성분이 열심히 개체를 확인하면서 촬영을 하고 계셨다.
저것이 진정한 탐조인의 모습이지... 나는 탐조보다 장비에 눈이 멀어 탐조를 시작한 경우니까 일종의 사이비랄까?
그러다가 장비보다 새가 더 좋아지고 있어서 바람직하다는 생각이 들기는 하지만 저런 열정이 부러웠다.
물은 1시간도 안되어 넓은 갯벌이 드러날 만큼 빠져버렸다. 이래서 만조 부근에 탐조를 와야 하는 거...
이 정도 물이 빠졌는데도 새들이 물을 따라 이동해서 거리가 멀어 촬영하기가 힘들어진다. 이럴 때 종을 기록하거나 관찰하기 위한 탐조 장비가 필요한가 보다. 역시 필드스코프가 있어야...
결국은 필드스코프를 사겠다는 얘긴데 도요새에 감동했는지 아내도 쿨하게 지르라고 불을 지른다. 아잉... 뭘 산담...
이날도 조용히 넘어가지 못하고 실수를 했는데...
해가 쨍쨍한 맑은 날씨라 셔터 속도를 늦춰버린 것... 아니... 맑으면 셔터 속도를 올려야지 왜 내리냐고...
그 바람에 잠시도 가만있지를 못하는 새를 촬영하고 보니 대부분이 흘러버렸다.
기억하고 또 기억하자. 조류 촬영의 최소 셔터 속도는 1/1000초다. 외우자 외워...
아무튼 이런저런 우여곡절 끝에 이날 촬영하고 확인한 새들은 다음과 같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날 가장 많은 개체수가 있었던 흑꼬리도요.
종으로 치면 이날 본 새만 15종이다. 아! 제비도 봤는데 너무 빨라서 못 찍음... 제비까지 치면 16종.
사실 찍긴 찍었다. 늦은 셔터 탓에 너무 빨라서 흘러 버려서 그렇지... 암튼 제비도 찍은 걸로 치면 16종이나 확인했다!!
돌아와서 촬영한 이미지를 가지고 끙끙거리면서 동정(同定)을 하느라 죽을뻔했다. 비슷비슷하게 생긴 데다가 아직 경험이 적어서 특징만 바로바로 캐치하기가 너무 힘들다. 결국 한 종류는 도저히 도감을 봐도 알 수가 없어서 조류갤에 질문을 올렸더니 10분도 안 돼서 답이 올라왔다. 역시 집단지성의 힘!!!
앞으로 동정하기 힘들면 종종 조류갤에 물어봐야지 생각하며 흐뭇해하고 있었는데,
설마 하는 생각에 구글 이미지 검색에 올려봤더니 1초도 안 돼서 답을 알려준다. 기가 막혀서... 지금까지 뭐 한겨...
이번에 촬영한 새와 지난번에 촬영했던 새들도 모두 넣어봤지만 정답률 100%.
관련된 사진도 함께 여러 장 보여주니까 동정하기가 너무 편하다. 이제 도감은 안녕이다.
몇 년 전만 해도 어리버리하더니 엄청 똑똑해졌네...
물 반 도요 반까지는 아니지만 많은 도요새를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공부를 좀 했으니 다음엔 더 즐겁게 탐조가 가능할 거다.
이날 봤던 모든 새들이 소중하지만 특히 마음이 가는 녀석은 검은머리물떼새.
도요새들 사이에서 눈에 띄는 외모라 신기해서 바라보기만 했지 멸종위기 야생생물인지는 알지 못했다.
이 갯벌이 사라지면 이 녀석들도 함께 사라질 운명... 갑자기 마음이 착잡해진다.
갯벌이 잘 보존돼서 이런 소중한 친구들과 함께 살아갈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