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마다 철새 탐조 여행 중인 요즘 이번엔 화성호 주변 습지와 매향리 갯벌을 다녀왔다.
이날 화성시 궁평항 만조가 새벽 5시와 오후 5시라 아주 애매한 시간이었는데, 새벽까지 별을 보다가 왔기 때문에 새벽 만조는 일단 포기. 오후 만조 2시간 전에 도착해서 상황을 살펴볼 생각으로 느지막이 일어나서 출발했다.
거리도 편도 68km로 가깝고 차도 안 막혀서 금방 도착! 서해안이 이렇게 가까운걸 왜 여태 몰랐을까...
도착해 보니 물이 모두 빠져나가서 바다가 몇 백 미터는 물러나 있다. 망원렌즈로 촬영해서 확대해 보면 새가 있구나 정도만 확인이 가능한 상황. 쌍안경으로는 그나마 좀 더 식별이 되지만 이런 원거리는 필드스코프가 필요하다. 고민만 하고 있었는데 더는 미룰 수 없으니 돌아가면 필드스코프부터 주문해야겠다.
바닷가 옆에 차를 주차하고 창문을 모두 열고 있으니 엄청 시원하다. 뒷 좌석에 카메라를 설치하고 물이 들어오기를 기다리며 누워있는데 쌍안경으로 감시하던 조수 아내가 백로가 날아왔다고 알려준다. 고개를 들어 보니 정말 백로 한 마리가 가까운 갯벌에 내려앉았다. 중대백로였다.
갯벌에서 뭔가를 열심히 잡아먹는다. 먹을 게 많은 모양. 도요새들은 저 멀리 있는데 백로라도 봐서 다행이다.
그런데 이 중대백로를 촬영하면서 눈치챈 건데 서쪽이라 늦은 오후가 되니까 모두 역광이었다. 사진이 전부 어둡다.
서해는 오전이 촬영하기 좋은 빛이라는 걸 하나 배운 셈이다. 초보가 그렇지 뭐... ㅠㅠ
아내는 풍경이 마음에 드는지 만족스러워하고 있어서 다행인데 오라는 새는 안 오고 갯벌에서 강아지가 한 마리 올라왔다.
근처에 캠핑하는 사람들이 많던데 거기서 음식을 얻어먹는 모양이었다. 근데 나보다 잘생겼...
알고 보니 두 놈이었는데, 캠핑하는 사람들한테 꼬리 치면서 애교를 발사!! 저쯤 되면 무장해제 안 되는 사람 없을 듯...
그렇게 애교 좀 쓰고 음식 얻어먹기에 성공하는 모습을 보니 짠하다. 주인이 없는 건지 궁금했지만 넉살 좋은 모습을 보니 잘 살아갈 거 같았다. 다음에 또 여기를 오면 강아지 간식이라도 좀 사 와야겠다.
저 멀리 백로가 또 한 마리 날아왔는데 멀리서 보는데도 다른 백로들보다 크기가 좀 작았다. 육안으로는 확인할 수 없어서 촬영해서 확대해 보니 노랑부리백로. 갯벌에는 참 다양한 종이 공존하는구나...
만조가 될 때까지 주변 수풀에서 새도 찾다 보니 시간이 후딱지나갔다. 그렇게 기다리던 만조가 되긴 했는데...
문제는 물이 다 들어오지 않는다. 원래 매향리는 이런가? 최대 만조 시간이 되었지만 물은 여전히 100m 밖이다.
너무 멀어서 촬영할 방법도 없고 종을 확인하기도 어렵다. 워낙 작은 녀석들이라 촬영해도 확인만 되는 수준.
계속 필드스코프가 필요하다고 투덜대니 아내가 얼른 사라고 오히려 재촉한다. 나이스!!
멀리 있는 새들을 촬영하고 확대해 보니 정확하지는 않지만 이날 매향리 갯벌은 뒷부리도요와 마도요 그리고 개꿩이 주를 이루는 거 같았다. 하지만 거리가 멀고 역광이어서 다른 종은 정확한 확인이 불가능. 지난주 아산만방조제 부근은 흑꼬리도요가 대부분이었는데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이지만 위치마다 주를 이루는 종류가 달라지는 것도 신기하다.
그렇게 포기하고 다른 곳으로 이동하려는 데 물가에서 뭔가 독특한 실루엣이 보였다. 백로와는 다른 부리...
오오오오오! 그토록 보고 싶어 했던 저어새다! 동정(同定)할 필요도 없었다. 그냥 딱 봐도 저어새다!
노랑부리저어새인지는 불분명했는데 확대해서 얼굴 모양을 보니 노랑부리저어새는 아닌 걸로 판정. 좀 더 자세히 보고 싶었지만 부리를 물에 넣고 저으면서 걸어가는데도 엄청나게 걸음이 빨라 빠르게 멀어져 갔다.
다른 새들은 모두 물에서 나와서 갯벌에서 쉬고 있는데도 저어새들은 무리를 지어 물을 휘저으며 먹이를 찾고 있었다. 저렇게 부리를 물에 넣고 젓는다고 고기가 잡히는지 궁금했는데, 눈먼 고기가 많은 건지 얘들만의 노하우가 있는 건지 계속 지켜보니까 꽤 사냥 성공률이 높다. 갯벌도 보존하고 사냥도 잘해서 개체수가 무럭무럭 늘었으면 좋겠다.
물에 있는 새들은 너무 멀어서 포기하고 주변 공터와 수풀에서 새를 찾아봤는데 집 짓고 있던 까치와 멧비둘기를 볼 수 있었다. 멧비둘기는 집 난간에 응가하고 도망가는 비둘기랑 다를 바 없어서 그냥 멀리서 보고 패스. 흥미 제로.
그렇게 잠시 멧비둘기를 보고 있는데 땅에서 총총 뛰어다니는 찌르레기를 발견!
땅에서 벌레를 찾는 거 같은데 날지 않고 깡총거리면서 뛰어다니는 게 신기하다. 사람이 있는데도 아랑곳 안 하고 먹이 사냥에 열중하고 있었다.
풀숲에서는 다른 새들의 소리도 들리는데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다. 수풀 외곽으로 나와주지 않으면 어떻게 찾아야 할지 전혀 감이 안 온다. 새를 찾는 방법에 대해 고민을 해봐야겠다.
이날 매향리 갯벌위를 하루종일 날아다니던 경비행기. 근처에 경비행기 타는 곳이 있나? 쉴 새 없이 날아다닌다. 얼마나 자주 날아다니면 카카오맵의 스카이뷰에도 같은 장소에 비행기가 찍혀있었다.
새들도 별로 반응하지 않는 걸 보면 익숙한 모양. 그런데 새들이 갑자기 날아 오르면 비행기도 위험할텐데... ㄷㄷㄷ
갯벌 탐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화성호 주변의 습지에 물새들이 있길래 차를 잠시 세우고 확인을 해봤다.
오리들과 백로들이 눈에 띄었는데 카메라의 망원렌즈로 확인을 해보니까 처음 보는 오리였다. 뭐 대부분은 처음 보지만...
꽤 먼 거리였지만 다행히 형체는 나왔다. 역시 고화소 카메라를 구입한 건 신의 한 수였음.
천천히 살펴보니까 오리들 말고 마도요 무리도 섞여있었는데 이곳에서 휴식을 취하는 거 같았다.
화성호는 정말 아름다웠다. 그리고 그 주변의 화성습지는 새들에겐 천국이나 다름없을 거 같았다. 화성습지는 생태계의 끝판왕이라고도 하던데 얼른 『람사르 습지』에 등록돼서 오래오래 보존되기를...
그때 어디선가 들려오는 꿩 울음소리. 꿩~~! (작명센스 원탑)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갈대밭에서 불쑥 화려한 깃털의 꿩이 튀어나온다. 딴짓하다 제대로 촬영도 못하고 멍하니 바라만 봤다. 화려한 깃털이 아주 멋지다. 어찌나 빠른지 호도도도도 달려서 다시 갈대숲으로 사라졌는데 다시 볼 수 없었다.
확실히 탐조는 새에 대한 지식도 꽤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아는 만큼 보이는 거지...
방문하는 지역에 자주 출몰하는 새들에 대해 미리 사전 조사를 좀 해야 할 듯. 무슨 취미가 다 이렇게 어려운지...
그리고 쌍안경의 활약상을 얘기 안 할 수가 없다.
이날 아내는 도착해서부터 돌아오는 차 안에서도 손에서 놓지를 않고 쌍안경이 아주 선명하다고 침이 튀도록 칭찬을 했다.
(중간에 왜케 무겁냐며 짜증을 살짝 냈지만 목에 걸지 않고 크로스로 매도록 고쳐주니까 곧 잠잠해짐.)
스와로브스키나 라이카 같은 쌍안경에는 못 미치겠지만 내가 봐도 솔로몬 HD 쌍안경은 정말 선명하고 잘 보였다. 시야도 넓어서 시원시원하고. 갯벌에서는 활용도가 좀 떨어지긴 하지만 엄청 넓은 시야로 훑으면서 종을 분리하고 필드스코프로 확인하는 패턴이 아주 그럴듯할 거 같다. 역시 쌍안경은 탐조의 필수 장비인 듯.
# 탐조 기록을 위해 오늘부터 총 몇 종류의 새를 관찰했는지 기록으로 남긴다.
# 2023년 5월 20일까지 총 39종의 새를 관찰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