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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찰기록/자연 관찰기

[2023년 7월 15일] 철원 탐조 여행과 캐논 R5 첫 사용기

by 두루별 2023. 7. 17.

사우론 타워가 구름에 들어갔다.

비가 억수같이 오는 날이었지만 아내와 철원으로 여행을 떠났다. 목적지는 철원 노동당사 맞은 편의 『소이산 생태숲 녹색길』.
도착했는데도 비가 많이 오면 멀지 않은 「민통선한우마을」에서 밥이나 먹고 돌아올 생각이었는데, 철원에 가까워질수록 비가 더 세차게 내렸다. 거의 앞이 보이 지를 않아서 차들이 거북이걸음이다. 

도착하니까 다행히 비는 부슬부슬 내리는 비로 바뀌었다. 궂은 날씨에도 많은 사람들이 방문했는데 철원에 별을 보러 오기만 했지 생태숲이나 모노레일이 있는 건 또 처음 알았다. 제2의 고향 어쩌고 하더니만 아는 건 쥐뿔도 없음... 반성중...

소이산 전망대까지 올라가는 모노레일

전망대까지 올라가는 모노레일을 타러 온 모양인지 가족단위로 많이들 왔다. 느릿느릿 움직이는 모노레일을 30분 동안 타는 모양. 전망대 올라가서 북녘도 보고 하는 모양인데 오늘처럼 비 오면 꽝이다. 그래도 아내는 다음에 꼭 타보자고 한다. 

모노레일 타는 철원역. 옛날 철원역을 복원한 모습인가 보다.

살짝 비가 오는 날씨지만 과감히 새로 구입한 캐논 R5와 100-500mm 렌즈를 꺼내 들고 산책 겸 탐조를 나섰다. 소니 같았으면 절대 안 했을 일이다. 소니는 예전에 비해 실링이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비 맞으면 작동을 멈춘다는 얘기가 많다. 하지만 캐논은 눈으로 봐도 실링 고무가 소니보다 2배는 크다. 그냥 믿고 쓰는 거다. 소니에 비해 막 쓸 수 있어서 좋음.

R5의 첫 손님 참새(참새목 / 참새과, 텃새)

R5의 첫 대상은 참새였다. 전신주에 앉아 있는 참새를 겨눴지만 예상대로 손에 익지 않아서 초점 잡기가 만만치 않다. 그래도 500mm라 확대율이 좋아진 건 마음에 든다. 디테일 좋기로 유명한 렌즈라 세부 묘사도 좋을 거라 믿음.

두 번째 손님은 역시 텃새인 까치(참새목 / 까마귀과, 텃새)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날씨에도 새들은 활동을 하고 있었다. 역시 해가 쨍쨍할 때가 새가 제일 없다.
까치를 촬영하면서 느낀 건데, R5가 새를 꽤 잘 인식한다. 소니 A1은 아주 가깝거나 큰 새가 아니면 인식하는데 시간이 좀 걸리는데 R5는 금방 새로 인식하고 눈이나 얼굴을 잡아준다. 한 가지 아쉬운 건 움직이는 새는 초점이 한 템포 느려서 인식은 잘 하지만 초점이 흐른 경우가 많다는 거... 

소니는 90/100, 캐논은 70/100, 니콘은 30/100이라는 해외 기사를 본 적이 있다. 100장 찍어서 초점이 맞는 경우를 말하는 건데, 소니와 캐논은 70% 이상이고 니콘은 30% 이하라는 얘기다. 촬영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빠르게 날아다니는 독수리에 초점을 맞추는 상황에서 테스트한 결과라고 한다. 

내가 촬영하는 상황과는 다르겠지만 캐논 R5의 초점은 생각만큼 빠릿하지는 않았다. 실내 테스트에서 AF가 좀 버벅이고 느리다는 건 알았지만 실제 상황에서도 빠릿한 성능은 아니었다. (소니 A1과 비교했을 때 그렇다는 얘기)

제비(참새목 / 제비과, 여름철새)

특히 날아가는 새를 촬영할 때 많이 비교가 됐는데, 소니 A1은 내가 촬영을 잘한다고 착각할 정도로 동체 추적이 너무 쉬웠다. 별다른 기술이나 노력이 필요 없고 그냥 뷰 파인더에 새를 넣기만 하면 초점을 놓치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하지만 R5는 뷰 파인더에 새를 도입해도 초점을 놓치는 경우가 많았고 새가 지나간 자리에 초점을 맞추는 경우가 많았다. 한마디로 한 박자 느리다는 거. 초점을 맞추는 게 느리니까 새는 이미 이동했는데 이동하기 전 위치에 초점을 맞추는 거다. 

그 바람에 날아다니는 제비 사진 한 장을 얻기 위해 수 십장을 날려야 했다. 동체 추적이 쉬운 줄 알았는데 아니었던 거다.
그렇다고 R5에 실망할 필요는 없다. R5가 못하는 게 아니고 A1이 너무 잘하는 거니까... 가격 차이를 생각하면 납득이 됨.

그렇게 한참을 제비와 씨름을 하다가 논 쪽으로 걸어가는데 저 멀리 하얀 머리가 살짝 보인다. 

얼굴만 빼꼼~ 내미는 중대백로(사다새목 / 백로과, 여름철새)
갑자기 논두렁에서 쏙 나온다.

R5의 장점은 아니지만 500mm의 확대율은 확실히 400mm 보다 좋다. 거리가 꽤 있었지만 중대백로의 디테일을 어느 정도 알아볼 수 있었다. 600mm가 아쉬운 거리지만 가볍고 다루기 쉬운 500mm가 아주 마음에 든다.

갑자기 길 옆 과수원의 나무에서 이상한 새소리가 들렸다. 두리번거리다 바로 앞 나무에 앉아 있는 녀석과 눈이 딱!
나뭇잎에 가려서 얼굴만 살짝 보이는 상황. 이런 상황에서 R5의 AF 성능이 궁금했는데 역시! 전혀 초점을 잡지 못한다!! A1도 이런 경우에는 50:50이다. 빠르게 포커스 링을 돌려서 수동으로 초점을 맞췄다. 아쉬운 점은 AF 상태에서 포커스 링을 돌리면 피킹 표시가 되지 않았다. 소니는 자동 확대 설정도 할 수 있고 피킹도 지원한다.

누...누구냐 넌...
머리는 온통 대머리 같고... 주둥이를 보면 유조인 거 같은데...
처음 보는 이 녀석은 칡때까치(참새목 / 때까치과, 여름철새)의 유조였다.

금세 날아가 버리는 바람에 몇 장 못 찍었지만, 아직 손에 안 익은 카메라로 수동으로 초점을 맞추는 건 생각보다 어려웠다. 그래도 간신히 몇 장 촬영에 성공! 나중에 동정해 보니 칡때까치의 유조였다. 아싸 종추!

날아가는 중대백로(사다새목 / 백로과, 여름철새)
비가 오는데도 잘 날아다닌다.

A1을 사용할 때는 날아다니는 새를 마구 촬영했는데, R5는 아직 익숙하지 않기도 하지만 초점이 영 불안하다. 일단 비교를 하지 말고 마음을 비우는 게 중요한 거 같다. 10장 중에 10장이 아니라 10장 중에 5장을 노리기로 했다.

그래도 R5의 커스텀 설정 기능은 최고다. 동체 추적용 설정을 * 버튼에 할당해 놓아서 날아가는 새를 촬영할 때는 * 버튼만 누르고 셔터를 누르면 된다. * 버튼에서 손을 떼면 모든 설정이 원 위치. 이거 정말 개꿀이다. 

카메라에 익숙해지면서 촬영 성공 회수가 늘었다.
이제 빠른 제비도 어느 정도 추적하며 촬영할 수 있을 정도로 적응했다.
그나저나 제비는 체형이 참 독특하다. 완전 오동통하면서 길쭉함.
빠르고 높게 날면서 땅에 있는 벌레를 어떻게 보는 걸까...

비 맞으면서 연습하니까 실력이 금방 는다. 처음보다는 확실히 동체 추적이 좋아졌고 결과도 조금 더 좋아졌다. 기계에만 의존하던 시대는 갔다. 이제는 몸으로 추적해야 함. 뭔가 시대에 역행하는 거 같은 건 기분 탓...

앗! 저 궁둥이는?? 누군지 모르겠다...
아하~ 등판을 보니 알겠다. 딱새(참새목 / 딱새과, 텃새)다!

비가 오락가락한다. 배낭에는 레인 커버를 씌웠다. 카메라에도 씌워야 하는 거 아니냐고 아내가 물어봤지만 괜찮다고 했다. 강하게 키워야 한다. 사실 카메라 레인 커버가 없다...

나를 보더니 바로 날아가 버리는 중대백로.
어디론가 날아가는 왜가리(사다새목 / 백로과, 여름철새)
날아가는 새를 촬영하고 보니 찍혀있던 물총새(파랑새목 / 물총새과, 여름철새, 텃새)

논두렁에서 나를 보고는 화들짝 놀라서 날아가는 정체불명의 녀석을 촬영했는데 수 십장의 초점이 하나도 안 맞았다. 복잡한 배경에서 날아가는 새는 내가 초점 스폿(Spot)에 새를 도입하지 못하면 초점도 못 맞추는 거 같다. A1은 이런 상황에서도 금방 새에 초점을 맞춰 주는데 아쉽다. 더 웃긴 건 초점 맞은 게 있나 확인하던 와중에 배경에 찍혀있던 물총새를 발견했다는 거... 정작 날아가는 새는 초점이 맞지도 않았다.

논에서 많이 보이던 노랑할미새(참새목 / 할미새과, 여름철새)
배의 노란색이 아주 예쁘다.
아래로 살금 살금 지나가면서 촬칵!

포천에서 봤던 노랑할미새를 철원에서 다시 만났다. 논두렁에서 뭔가를 먹고 있었는데 개체수가 꽤 되어 보였다. 물총새도  이곳저곳에서 날아다녔는데 코 앞에 앉아있던 물총새를 못 보고 지나가는 바람에 날려 먹은 게 아직도 아쉽다...

소이산 초입에 걸려있던 곤충 아파트.

생태숲길을 따라가면 소이산 전망대까지 올라갈 수 있었지만 산행이 시작되면서 비가 오기 시작한 데다 바닥이 미끄러워서 무리였다. 아내도 힘들어하는 거 같아 탐조는 여기서 끝.

비를 쫄딱 맞은 멧비둘기(비둘기목 / 비둘기과, 텃새)
뭔가 빛 바랜 느낌의 참새와 배경

주차장으로 돌아오는 길에 멍하니 앉아있는 참새를 발견하고는 갑자기 동영상 테스트를 해보고 싶어졌다. 사진은 전날 미리 설정을 해뒀지만 동영상은 아무런 설정을 하지 않은 상태다. 일단 안정화가 어느 정도 느낌인지만 테스트해 보기로 했다.

오호!~ 소니에 비하면 짐벌 수준이다. 흔들림이 이 정도면 합격이다. 손으로 들고 촬영해도 문제없다는 걸 확인했다. R5를 구입한 이유이기도 했던 동영상 안정화는 만족스럽다. 유일하게 소니 A1보다 나은 부분.

다시 만난 노랑할미새.
날아가지 않게 거리를 두고 한참을 관찰했다. 논 주변에 아주 많은 거 같았다.
귀여운 아기 참새. 얼마나 작은지 쇠박새만 하다.

저녁 식사를 위해 신철원으로 이동하던 중 오랜만에 「두루미평화타운」에 들렀다 가기로 했다. 

겨울엔 온통 두루미 천지였는데 이제는 백로 몇 마리만 보인다.
날이 어두워져 중대백로를 끝으로 탐조 진짜 끝.

이날 따라다니느라 고생한 아내에게 소고기를 실컷 먹여주고 돌아왔다. 

R5는 첫 사용이라 기능 익히는데 정신이 없었다. 집에서 충분히 사용해 봤다고 생각했는데도 현장에서는 역시 조작이 서툴다. 거기다 아직은 A1에 익숙한 상태라 R5에 맞게 대상을 도입하는 방법을 찾고 연습할 필요가 있다. R5의 AF가 느린 것도 있지만 지금은 초점이 맞는 사진을 찾기가 힘들 정도다. 

그리고 촬영 결과를 확인하면서 느낀 건데 R5의 AWB(Auto White Balance)는 색감이 보라색에 치우쳐 나오는 느낌이다. 날씨 탓도 있겠지만 색이 영 마음에 안 든다. 「태양광」으로 설정하고 촬영하라는 조언도 있는 걸 보면 나만 그런 게 아닌가 보다. 다음 촬영에서는 화이트 밸런스를 「AWB」가 아니라 「태양광」으로 변경해서 촬영하고 결과를 비교해 봐야겠다.

언제나 새로운 장비를 사용해 보는 건 즐거운 일이다. AF가 아쉽지만 나한테는 뛰어난 조작성과 동영상 안정화 그리고 500mm 화각으로 충분히 커버가 된다. 첫 사용하는 날 부터 비가 오는 바람에 제법 비를 맞았는데도 멀쩡하게 동작하는 R5의 신뢰성은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캐논을 선택하는 이유가 아닐까...

벌써 새도 보고 싶도 R5도 빨리 더 사용해 보고 싶다. 이게 캐논의 매력인 듯. 그나저나 전자 셔터로 촬영할 때 소리 좀 내주면 좋을 텐데 그걸 안 해주는 캐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