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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찰기록/자연 관찰기

[2023년 8월 3일] 제주도 탐조 여행 - 3일차 (노을해안로, 수월봉, 고산포구, 금능포구, 동백동산)

by 두루별 2023. 8. 9.

제주도 여행 셋째 날. 오늘은 기어이 새벽에 길을 나섰다. 어제 하루 종일 돌아다녔지만 거의 새를 보지 못해서 기운이 빠진 상태. 그래도 아내는 재밌었다고 나를 위로해 준다. 착한 마누라 같으니라구... 

지금까지는 제주도의 서쪽 해안을 돌았는데, 오늘은 동쪽 해안으로 가 볼 생각이다. 노을해안로를 따라 북쪽으로 올라가며 해안가의 새를 관찰할 예정. 

동쪽해안은 숙소에서 멀지 않아 40분 만에 도착했다. 제주도 느낌 가득한 한적한 시골 마을을 지나 노을해안로를 따라 북쪽으로 이동하며 해안가의 새들을 관찰했는데 용암석으로 뒤덮인 해안가 풍경이 너무 아름다웠다.

가마우지(사다새목 / 가마우지과, 텃새)
왜가리(사다새목 / 백로과, 여름철새, 텃새) 두 마리. 아침부터 부지런하다.
또 왜가리들...
또...
또... 또...
꼭두 새벽부터 사냥을 했는지 깃털을 말리는 가마우지
또 왜가리...

새를 찾지 않더라도 그냥 드라이브만 해도 너무 좋은 도로. 이런 아름다운 도로에서 새만 보이면 정차를 하고 확인하는 과정을 반복했지만 온통 왜가리들뿐이었다. 그래도 희망적인 건 서쪽보다는 새가 많이 보인다는 거다. 왜가리뿐이지만...

출처: 카카오맵

해안 도로를 따라 이동하다가 우연히 수월봉에 들르게 됐는데, '수월봉전망대' 가는 길에 잘 보면 절벽 바로 앞에 정자가 하나 있다. 이 정자가 아주 끝내주는데 발 헛디디면 바로 저세상... 그런데 바로 절벽 앞이라 절벽 아래도 볼 수 있고 수월봉 측면 절벽이 다 보이는 뷰 맛집이다. (수월봉전망대에서는 바다만 보임)

이 정자에서 절벽을 따라 날아오르는 매 두 마리를 봤다. 매가 바로 코앞까지 날아왔는데도 카메라를 차에 두고 오는 바람에 멍하니 바라보기만 해야 했다. 다른 세상에서 갑자기 나타난 것처럼 갑자기 나타난 매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차로 냅다 달려가서 카메라를 가져왔지만 매는 이미 저 멀리 날아가고 말았다... 그래도 눈으로라도 담았으니 됐다... 어흑...

수월봉전망대는 특별히 볼 게 없었다. 어떤 막돼먹은 놈들인지 쓰레기를 곱게 담아서 처마에 걸어두고 간 쓰레기만도 못한 놈들의 흔적과 강아지 덩이 아주 그냥... 강아지는 죄가 없다. 그냥 간 인간이 쓰레기지. 밟았으면 어쩔 뻔...

수월봉에서 바라본 차귀도.
제주도에선 참새 보다 많은 직박구리(참새목 / 직박구리과, 텃새)
수월봉전망대 절벽 아래의 작은 암초에 모여있는 가마우지들.
전망대에 떨어진 음식을 주워먹고 있던 참새(참새목 / 참새과, 텃새)
좀 비켜라... 사람 보고 도망을 안 감.
멀리 고산포구가 보인다.

저 멀리 고산포구가 보였는데 풍경이 이국적이고 너무 아름다웠다. 해안가를 따라 둘레길도 있는 거 같았는데 해안도로를 따라가는 길은 아니었지만 고산포구에 들러 보기로 했다.

고산포구는 차귀도와 마주한 아담한 항구였다. 이제 아침 9시가 넘은 시각이라 관광객은 우리뿐. 한적하고 좋았다. 조용한 항구가 맘에 들어 아내와 함께 이곳저곳을 둘러보고 있었는데 항구 옆 방파제에서 새 한 마리를 발견했다.

알락할미새(참새목 / 할미새과, 여름철새)

알락할미새였다. 사진 몇 장을 찍고 있는데 쌍안경으로 둘러보던 아내가 조용히 얘기한다. '앞에 검은 새가 하나 있어요...'
검은 새라고? 나는 안 보이는데... 두리번거리다 보니 방파제와 맞닿은 갯바위에 진짜 검은 새가 하나 있었다.

잔뜩 웅크리고 있는 시커먼 녀석... 부리도 몸도 온통 검은색이다.
세상에... 지금까지 애타게 찾던 흑로(사다새목 / 백로과, 텃새)다...
드디어 만난 흑로. 바위랑 색이 비슷해서 자세히 보지 않으면 안 보인다.

물때가 맞아서인지 바다에서 사냥하는 흑로를 관찰할 수 있었다. 항구 주변엔 크고 작은 물고기들이 많이 보였는데 물고기가 마구 움직이니까 흑로가 정신을 못 차리더니 순식간에 물고기를 낚아챈다. 정말 빠르다...

얼른 뭍으로 잡은 물고기를 들고 이동...
조심조심 물고기를 옮겨서는 꿀꺽~ 진귀한 광경을 목격했다.
다시 사냥을 하려는 흑로.
하지만 물이 빠르게 차 오르자 흑로는 다른 곳으로 날아갔다.

그동안 흑로를 못 찾아서 풀이 죽어있었는데 떠나기 전날 드디어 흑로를 만났다. 아내가 못 찾았으면 나는 있는지도 몰랐을 거다. 어떻게든 찾으려고 열심히 둘러보던 아내가 너무 고마웠다. 역시 탐조는 아침 일찍 움직여야 새를 볼 수 있다. 오늘도 조금만 늦었으면 물때가 맞지 않아 흑로를 볼 수 없었을 거다. 

우연히 들른 고산포구. 풍경도 아름다웠지만 흑로를 처음 본 곳으로 기억될 거 같다. 

저 멀리 등대위에 바다직박구리(참새목 / 지빠귀과, 텃새) 수컷이 앉아있다.
아까 촬영하지 못했던 매(매목 / 매과, 텃새)가 지나갔다!

항구 주변이 당산봉으로 둘러 쌓여있어서 절벽이 있는 지형이라 매가 서식하는 모양이었다. 아까 놓쳤던 매를 이곳에서 다시 만났다. 아까처럼 코앞은 아니고 저 멀리 날아가는 녀석을 간신히 촬영. 그래도 매를 본 것만 해도 감지덕지다.

흑로를 보고 나니 갑자기 여유가 생겼다. 제주도에 와서 가장 보고 싶었던 새가 바로 흑로. 황금새나 팔색조, 긴꼬리딱새등도 볼 수 있었으면 좋았겠지만 깊은 숲속에 사는 녀석들이라 며칠 일정으로는 쉽지 않을 걸 알았기에 흑로만큼은 꼭 보고 싶었는데 아내 덕분에 드디어 만나게 됐다.

이미 만조여서 다른 곳으로 이동해도 해안가에서 새를 보기는 쉽지 않을 거 같아 아름다운 풍경의 고산에서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해안가를 따라 이어진 둘레길을 걸으며 오랜만에 여유 있는 여행을 할 수 있었다.

열심히 날아가는 가마우지.
암초위의 가마우지들.
절벽 아래에도 어김없이 직박구리.
갑자기 바다에 남방큰돌고래(고래목 / 돌고래과) 떼가 나타났다. 수십마리다.
열심히 어미를 따라가는 새끼 돌고래. 보기 힘든 장면을 보게 됐다.
푸른 바다에서 무리 지어 이동하는 돌고래 떼.

올레길을 걷다가 무리 지어 이동하는 남방큰돌고래 떼를 만났다. 수십 마리는 되어 보였는데 아기 돌고래도 볼 수 있었다. 인상적인 건 등지느러미가 모두 다른 모습이었는데 상처가 아주 많았다. 돌고래들도 사는 게 쉽지 않은 모양이다.

닭의장풀(닭의장풀목 / 닭의장풀과)
저 멀리 풍력발전기가 이국적이라는 아내.
많은 것을 볼 수 있었던 고산. 알럽고산! 풍경도 최고다!

새벽부터 움직였더니 피곤하다. 바닷가 바로 앞 카페에서 커피와 빵으로 잠시 휴식하며 에너지 충전. 이 뜨거운 여름에 뜨거운 커피를 마신다고 아내가 놀렸다. 난 아이스커피는 무슨 맛에 먹는지 모르겠다...

고산포구를 떠나기 전 만난 참새
그리고 제비(참새목 / 제비과, 여름철새)를 끝으로 고산포구를 떠났다.

흑로를 봤으니까 제주도 탐조는 성공. 이제부터는 경치를 감상하면서 드라이브를 즐기면 된다. 해안가를 따라 이동하며 이곳저곳을 둘러보면서 관광 아닌 관광을 즐겼다.

해안가 풍경이 너무 아름답다.

신창항에 들렀다가 밥때가 되어 간판만 보고 들른 '그린사이공'이라는 처음 보는 베트남 음식점. 아침 11시 반부터 오후 4시까지만 영업하는 이상한 가게. 12시도 안 됐는데 대기해야 했다. 딱히 다른 식당도 보이지 않아서 기다렸는데 이 집 대박이었다.

이집 반미는 베트남에서 먹었던 맛이랑 똑같았다. 쌀국수도 최고다.
껌숭(숯불 돼기고기 밥)... 간단하지만 너무 맛있었다.
베트남 보다 더 맛있는 베트남 음식점 그린사이공

직원들도 친절하고 사장님도 엄청 친절하심. 음식에 대해 자부심이 느껴졌다. 먹는 방법까지 상세하게 설명해 주셔서 처음 먹어보는 껌숭도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가격까지 저렴함...

점심 먹고 나니 벌써 시간이 오후 1시다. 내일 서울로 돌아가야 하니까 오늘은 좀 일찍 숙소로 돌아가는 게 좋을 거 같다. 항구 투어가 나름 재밌었는데 마지막으로 금능포구에 들러 보기로 했다.

괭이갈매기(도요목 / 갈매기과, 텃새)
제주 해안가에는 갈매기가 의외로 안 보인다.
제주도 항구에서 갈매기 보다 자주 본 파랑새(파랑새목 / 파랑새과, 여름철새). 촬영은 첫 성공이다.
아이구 너무 선명해서 징그럽다... 아내는 박제한 거 같단다.
한라산은 구름에 덮였는데 해안가는 맑아서 불볕더위다.
막다른 길의 등대.
노랑발도요(도요목 / 도요과, 나그네새)
제주도 해안가 갯바위에서 자주 목격되는 노랑발도요.
이번엔 가까운 거리에서 볼 수 있었다.

해안가 탐방을 끝내고 나니 시간이 애매하다. 숙소로 돌아가자니 너무 이른 시간...
아내에게 미안했지만 입구에 새가 많았던 기억에 첫날 개고생했던 동백동산에 잠깐 들러보기로 했다. 

오늘도 한적한 동백동산
동백동산 탐방로 입구.

오늘은 입구에 새가 없었다. 참새는 여전했지만 다른 새들은 다들 다른 데로 간 모양이다. 이대로는 아쉽다. 아내 눈치를 살피며 첫날 걸은 길과 반대로 1.5km 정도 되는 짧은 숲길을 통과해서 동박새들이 많이 있던 곳을 가보기로 했다. 힘들 텐데도 아내는 괜찮다고 흔쾌히 따라나선다.

동백동산은 숲이 이렇게 빽빽하다. 나무 뒤쪽은 아예 안 보이는...

첫날 방문 때와 달리 새소리가 아예 안 들린다. 입구부터 섬휘파람새 소리도 들리고 각종 새소리가 들렸었는데 갑자기 모두 떠난 것처럼 숲속이 고요하다. 직박구리 소리만 요란했다.

괜히 왔나 보다. 새도 없는데 뒤에서 힘겹게 따라오는 아내가 걱정됐다. 계속 괜찮냐고 물어봤지만 괜찮다고 얼른 가란다. 생각 같아서는 업어주고 싶지만 나도 저질 체력이라 계속 돌아보는 거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동박새(참새목 / 동박새과, 텃새)
동박새가 많이 있던 나무에는 오늘도 동박새가 바글바글했다.

다행이다. 동박새가 있었다. 그것도 아주 많다. 문제는 얘들이 잠시도 가만있지를 않고 이리저리 움직이는 바람에 촬영이 쉽지가 않다. 서울 새들은 점잖은 거였다. 제주도 새들은 거리를 잘 안 준다.

직박구리(참새목 / 직박구리과, 텃새)가 동박새를 다 쫓아낸다.

직박구리가 방해를 해서 동박새가 숲으로 날아가 버렸다. 도움이 안 된다... 1.5km 숲길을 걸어왔는데 동박새와의 만남은 허무하게 끝났다. 온 길을 다시 돌아가야 한다. 

갱년기 요정 아내가 체력이 많이 떨어져서 걱정이다. 예전엔 내가 못 따라갔는데 이젠 내가 더 건강하다니...
힘들게 온 길을 다시 돌아 나왔지만 여전히 새는 보이지 않았다. 정말 다른 곳으로 이동했나 보다. 새들은 항상 이동하고 돌아오기를 반복하니 이상할 건 없다. 오늘은 그런 날인가 보다.

제주도에서의 마지막 날이 이렇게 저물어 간다. 내일은 공항으로 이동하기 전 북쪽 해안을 잠깐 돌아 볼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