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맑은 주말 오후. 보름이긴 하지만 밤에 후배와 별을 보기로 해서 망원경도 챙겨 탐조를 나섰다.
갯벌 탐조는 시즌이 끝나서 당분간은 산과 들로 새를 찾아 나서야 하는데 초보라 딱히 갈만한 곳이 없다...
어디에 새가 있을지 모르지만 호반새와 개개비를 보기 위해 포천으로 떠나 본다.
가는 길에 연천에 들러 이번에도 비빔국수 한 그릇씩... 그런데 물린다... 자주 먹으면 안 되겠다. 아주 가끔 먹는 걸로...
한 달 만에 다시 찾은 '포천 한탄강 꽃정원'은 행사를 하는지 사람들로 바글바글하다. 여기까지 오는 사람들도 있구나...
좋은 날씨에 조용히 꽃과 자연을 즐기면 좋을 텐데, 어울리지 않게 밴드까지 불러다가 시끌시끌하게 행사를 하고 있었다.
문제는 시끄럽고 사람들이 많은데 새가 있을 리가 없다. 잠깐 둘러봤지만 역시 새는 한 마리도 없었다.
그나마 사람들이 들어갈 수 없는 갈대밭에서는 여기저기서 개개비 울음소리가 들렸지만 찾기 실패.
포천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다 개울가 주차장에 주차하고 본격적인 탐조 시작.
차에서 내리자마자 저 멀리 산에서 노란 새와 황조롱이처럼 생긴 맹금류가 싸움을 하고 있었다. 노란 새는 꾀꼬리가 아닌가 싶은데 거리가 너무 멀어 촬영은 포기. 그래도 드디어 새를 봤으니 희망이 생긴다.
멀리 날아가고 있는 왜가리도 발견. 왜가리나 백로는 논이나 물가에 가면 쉽게 찾을 수 있다. 쿨하게 왜가리를 뒤로하고 여름 철새를 찾으러 한참 동안 수풀을 헤치고 이곳저곳을 돌아다녔지만 그렇게 울어대던 녀석들이 사람이 접근하면 조용해진다. 초보인 나는 소리마저 안 들리면 새를 찾는다는 건 거의 불가능. 이래서 탐조 선배들이 집 근처 탐조를 먼저 시작하라고 조언하나 보다. 멀리까지 가도 새 한 마리 못 만날 수 있으니까 말이다.
그 와중에 또 후다닥 날아가는 민물가마우지 발견. 나는 민물가마우지의 앉아있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항상 날샷이다.
새 얼굴 한 번 못 보고 개울가로 돌아왔는데 그때 익숙한 뒷모습의 새가 한 마리 날아간다. 도요새다!!
포천에서 도요새라니... 종은 모르겠지만 날개 색과 형태만 봐도 도요새인 건 알 수 있었다.
그렇게 빠르게 날아다니던 녀석이 나 때문인지 먼 물가에 내려앉았다. 거리가 멀어서 촬영을 해도 확인이 쉽지 않다.
하천과 풀숲을 돌아다닐 때는 카메라 무게도 버거워 필드스코프는 따로 챙기지 않았는데 꼭 이런 일이 생긴다.
집에 와서 동정을 해 보니까 깝작도요인 거 같다. 멀리서 촬영한 선명하지 않은 사진만 가지고 동정을 해야 하니까 확신은 못하겠지만 머리의 흰띠와 어깨의 형태 그리고 다리 색을 보면 깝작도요가 확실한 거 같다.
무리로만 다니는 도요새들을 보다가 단독 혹은 쌍으로 다닌다는 깝작도요는 좀 신기했다. 그런데 이 녀석 왜 아직도 한국에 있는 걸까. 지금쯤이면 러시아에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낙오된 게 아닌가 궁금하던 중 알고 보니 여름철새. 도요새는 나그네새만 있는 줄 알았는데 철새도 있다는 걸 알게 됨.
깝작도요를 끝으로 포천에서는 더 이상 새를 찾을 수 없어서 논이 많은 철원으로 이동했다. 논에는 항상 백로 한 두 마리는 있으니까 백로라도 볼 생각이었다.
예상대로 논에서 바닥을 열심히 째려보고 있는 중대백로를 발견!
다른 새들과 달리 백로들은 그래도 거리를 좀 주는 편이었다. 두루미와 비교하면 절반도 안 되는 크기지만 순백의 하얀 깃털은 언제 봐도 눈에 확 띈다.
아직 해가 남아 있어서 오리들이라도 볼 수 있을까 싶어 이번에는 학저수지로 이동. 새는 참 찾기 어렵다...
가는 길에 중대백로를 더 볼 수 있었다. 두 녀석이었는데 한 녀석은 나를 보더니 날아가 버리고 한 녀석만 남았다.
열심히 사냥 중이었는데 사냥 성공률이 그렇게 높지 않은 모양이다. 몇 번 머리 공격을 시도했는데 헛방이었다.
한 참 백로를 구경하다 도착한 학저수지에는 항상 있던 오리들은 온데간데없고 두 마리의 왜가리만 날아다니고 있었다.
다른 데는 오리 새끼들이 부화해서 함께 다닌다고 귀엽다고 난리인데 여기 살던 오리들은 다 어디를 간 걸까...
오리도 없는 학저수지는 이제 당분간 올 필요 없을 거 같다. 철새가 돌아오는 가을에나 다시 와야겠다.
저수지 옆 연꽃 연못에는 아직 연꽃은 피지 않았지만 개구리가 바글바글했다. 아내는 기겁을 했지만 오랜만에 보는 개구리가 나는 귀여웠다. 걸어가면 놀란 개구리들이 풍덩풍덩 연못으로 뛰어든다.
아내와 함께 해지는 저수지 주변 길을 걸으며 풍경을 감상하고 있는데, 여기서도 익숙한 개개비 녀석의 노랫소리가 들린다. 하루종일 얼굴은 못 보고 노래만 들었는데 정말 여기저기 많기도 한가 보다. 아무 데나 가도 개개비 노래가 들리는 걸 보니.
그때 갈대밭에서 작은 나무로 뭔가 포로록 날아간다. 거리가 좀 됐지만 직감했다. 저 녀석 개개비다.
하루 종일 찾아다니던 개개비 선생을 드디어 만났다! 개개비~ 개개비~ 하고 엄청나게 울어 대더니만 이제야 얼굴을...
남들은 쉽게 보는 거 같던데 나는 이 개개비를 찾기가 정말 어려웠다. 여기저기서 소리만 들리고 보이 지를 않으니 찾을 방법이 없었다. 이번처럼 내가 있는 곳으로 새가 날아와 주는 행운이 아니고선 깊은 숲이나 갈대숲에 사는 새들을 찾는 건 정말 쉽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번에도 나뭇가지 사이로 촬영을 했는데 호반새 때와는 달리 이번에는 카메라가 정확하게 개개비에 초점을 맞춰줬다. 사실 이번에 사용한 카메라는 소니 A7R5가 아니고 새로 구입한 소니 A1이다. 며칠을 고민하다 초점 때문에 스트레스받지 말자는 생각에 큰맘 먹고 하나 더 구입한 것인데 왜 A1을 끝판왕이라고 부르는지 알겠다. 초점은 정말 끝판왕.
이날 목표로 한 개개비와 호반새 중에 개개비를 만났으니 절반의 성공이 아니라 개인적으로는 대성공이었다. 더위에 지쳐 우울하던 기분도 싹 날아갔다. 이제 후배를 만나러 관측지로 이동해야 할 때다. 그전에 저녁을 먹기 위해 동송 읍내로 들어갔는데 해뜨기 전과 해지기 전에 가장 새들이 활발하게 활동한다더니 안 보이던 새들이 여기저기서 보인다.
찌르레기가 철원까지 날아왔나 보다. 깃털이나 생김새가 성조(成鳥)가 아닌 찌르레기 유조(幼鳥)인 거 같은데 짧은 경험으로는 확신하기 어렵다. 그리고 어린 까치도 만났는데 얘는 딱 봐도 애기라는 걸 알 수 있었다.
한창 새들의 번식기라 그런지 어린 새들이 자주 보인다. 어린 까치가 막 이소(離巢)를 한 듯 꺼벙한 얼굴로 전선에 앉아있는데 주변에는 어미 까치로 보이는 녀석들이 울어대고 있었다.
뭔가 평화로우면서도 소란스러운... 이런 자연을 항상 느낄 수 있는 철원으로 이사 오고 싶다...